제1야당 소속 30대 변호사
부패 정치권 혐오 여론에 당선
“아들이 이렇게 엉망인 로마에서 살도록 놔둘 수 없다.”
2011년 두 살배기 아들의 손을 잡은 채 로마 개혁을 주장하며 당차게 이탈리아 정계에 진출했던 비르지니아 라지(38). 그는 19일(현지시간) 이탈리아 수도 로마 사상 최초의 여성 시장으로 선출됐다. 부패와 범죄로 얼룩진 로마를 탈바꿈하겠다는 포부를 앞세우며 정치에 입문한 지 5년 만에 이탈리아의 새 역사를 쓰게 된 것이다.
이탈리아 내무부는 이날 치러진 지방선거 결선투표에서 로마 시장에 출마한 제1야당 ‘오성운동(M5S)’소속 라지 후보가 67.2%의 압도적인 득표율로 로베르토 자케티(민주당) 후보(32.8%)를 누르고 당선됐다고 발표했다. 선거본부에서 승리 소식을 접한 라지 당선인은 “기회의 평등이란 개념이 신기루처럼 손에 잡히지 않던 로마에서 처음으로 여성 시장이 탄생했다”며 자축 연설을 했다.
라지는 결선투표 이전부터 눈에 띄게 인기몰이에 성공하며 당선의 기대를 모아왔다. 지적재산권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다 2011년 정계에 발을 들인 라지는 2013년부터 로마시 의원으로 일하며 특히 교육, 환경 이슈 등에서 능력을 발휘했다. 로마 토박이라는 출신 이력에 더해, TV 토론에서 보여준 침착하면서도 논리적인 언변, 상냥한 태도와 수려한 외모 등 개인적인 매력도 로마의 표심을 움직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당선을 가능케 한 주요 원인은 라지 당선인이 기성 정치권에서 쉽게 발견할 수 없던 참신한 인물이라는 점이다. 로마는 지난해 10월 마리오 이냐치오(민주당) 전임 시장이 공금 유용 혐의로 사임하면서 기성 정치권에 대한 혐오가 극에 달한 상태였다. 이런 와중에 정치 신인인 라지 후보가 로마의 열악한 공공 인프라, 교육 환경 등 일상에 산적한 문제들을 지적하자 전략이 적중한 것이다. 라지는 지난 20년 동안 처참했던 로마 시 운영실태를 조목조목 지적하며 “투명하고 정의가 바로 서는 로마를 재건할 것이며 로마 시민 모두를 위한 시장이 되겠다”고 밝혀왔다.
라지의 로마시장 당선으로 오성운동은 정치적 입지를 한층 넓힐 수 있게 됐다. 오성운동은 유럽발 글로벌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코미디언 베페 그릴로가 ‘깨끗한 정치’를 구호로 내걸고 창설한 신생정당이다. 이날 이탈리아의 4대 주요 도시 중 로마와 토리노에서 시장을 배출한 오성운동은 전국 정당 이미지라는 최대 전리품을 얻었다는 분석이다. AFP통신은 “저항 정당으로 여겨졌던 오성운동이 로마에서 승리함에 따라 최고(top) 리그에 진입했다”고 보도했다.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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