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만큼 보인다고 한다. 하지만 보고 싶은 만큼 보는 건 아닐까. 여행을 떠나며 열심히 자료를 찾아보는 이유도 더 많이 보고 싶다는 마음의 발로일 것이다. 여행 중에도 종종 책을 펴 드는 분들이 있다. 여행지와 어울릴만한 책으로 고르고 골라 담았을 터이다. 반가운 소식 하나, 여행자들의 발길을 붙잡는 착한 동네책방들이 제주 곳곳에서 운영되고 있다.
▦즐거운 상상공작소 라이킷(Like it)

동문시장 인근 칠성로 입구에 카페 느낌의 ‘책빵’이 있다. 빵은 팔지 않는단다. 즐거운 상상공작소라 이름 붙인 라이킷의 개성이라면 작은 공간이 주는 편안함과 친근함은 물론 책 고르는 수고를 덜 수 있는 좋은 책들이 많다는 것이다. 가게 안에는 제주 말로 ‘트멍(틈)’이라는 뜻의 인문책방도 있다. 종종 전시회와 책모임이 열리는 공간이다. 여행객들을 위해 제주 관련 책도 잘 갖추어져 있고 코너마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들이 신선하다. 작은 책방의 경쟁력은 이런 데서 생기는 것이리라. 문을 나설 때면 손에는 여행 중에 읽고 싶은 책 한 두 권과 예쁜 엽서, 스티커가 들려있기 일쑤다. 며칠 일용할 양식을 얻은 듯 마음이 넉넉해지는 ‘책빵’이다.
▦취향공유프로젝트, 딜다 책방

‘딜다’ 책방에 들어섰을 때 이 곳 주인은 분명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지 싶었다. 정말 그렇단다. 내가 읽었고, 아이들에게 읽어주었던 책들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 용기를 낸 이 땅의 엄마들 중의 한 명인 셈이다. 그런데 책방에선 전문가의 손길이 묻어났다. 알고 보니 디자이너와 마케터가 함께 운영하는 문화콘텐츠기획사 ‘딜다’의 사무실인 동시에 취향공유프로젝트 공간이라 한다. 기획자의 안목으로 운영되는 프로그램은 어떨까. 주말에는 아이들의 낙서로 만드는 ‘낙서 땀’이라는 성장 드로잉 북 만들기와, 동네 옛 이름을 딴 ‘모흥골 호쏠장터’와 연계한 ‘아꼬운 아이 장터’가 열린다. 느리게 읽는 책 모임도 있단다. 딜다 책방은 단행본과 국내외 독립출판물, 디자인 북, 제주관련 서적 등을 판매하는데 특히 어린이 그림책 분야가 눈에 띈다. 전시와 공연도 함께 진행하며 ‘책을 접하는 시간의 다양화’를 꾀하고 있다. 여기선 일상의 부산함을 잊은 채 느리게 책 읽는 즐거움을 누려보고 싶다.
▦종달리 소심한 책방

‘소심한 책방’이라는 말에 주인장이 궁금해졌다. 이름처럼 책방 주인은 정말로 소심해 보였다. 시골마을 한 가운데에 들어선 책방이 그리 낯설지 않고 정겹게 다가오는 이유는 겉모습을 유난스럽게 단장하거나 고치지 않은 까닭이다. 간판도 조그맣다. 요즘 제주에 이주해온 사람들 중에 시골집을 요란하게 꾸미고 게스트하우스나 카페를 여는 곳이 많아져서 눈살을 찌푸리게 되는데…. 책방을 들어서니 잊었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천장이 낮은 집, 작은 방에 가득한 책 향기에 마음이 푸근해진다.
소심한 책방은 요즘 젊은 여행자들에게 많이 알려져서 작은 서점 안이 북적북적했다. 서가에 꽂힌 책을 보면 그 안목이 남달라 보인다. 두 사람이 운영하는데, 한 사람은 서울에서 책을 골라 보내고 한 사람은 제주에서 책방을 운영하고 있단다. 손으로 꾹꾹 눌러쓴 듯한 주인장의 추천 글이 마음을 끈다. 정성을 들인 것은 누구든 알아보게 되는 법. 찬찬히 책장을 들여다보니 손이 가는 책들이 많다. 그렇게 책을 고르며 오래 머물고 싶은 공간이다.
▦도서관 같은 책방, 서귀포 북 타임

‘북 타임’에 들어서면 여기가 책방인지 도서관인지 의아해진다. 내부에 놓인 책상과 의자들이 그렇고 안쪽에 설치된 다락방과 미끄럼틀도 재미있다. 정기적으로 작가와 함께 하는 북 콘서트와 음악회 그리고 영화 상영회 및 전시회를 여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다. 임기수 대표는 10여년 가까이 어린이도서관을 운영한 경험을 살려 고향 서귀포에 책방을 열었다. 책에 대한 사랑과 열정만큼은 대한민국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들 것이다.
도서관 운영도 어렵지만 책방 역시 수익을 내기는 어려운 곳. 임 대표는 책방의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 커피 전문점 ‘빽다방’을 유치해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있다. 무엇보다 ‘시민 서재’라는 코너가 눈에 뛴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책을 읽을까. 북 타임은 삭막하던 서귀포의 문화지도를 새로 그려가고 있다. 시민들이 도서를 기증하고 그 책을 도서관처럼 읽다 갈 수 있는 편안함이 있는 책방이다.
▦이상한 책방, 책+방 서사라

골목 안에 플래카드 천으로 임시 걸어둔 책방을 찾아가는 길은 만만치 않다. ‘책+방 서사라’는 젊은 예술가들의 레지던스 공간으로도 운영되고 있는데 아직 간판도 달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 곳이 눈길을 끄는 이유는 파는 책은 몇 권 되지 않고 주인장이 소장한 책들이 더 많은 까닭이다. 이렇게도 책방을 운영할 수 있구나, 그 실험정신과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참여 작가들의 전시와 엽서 및 작은 작품도 구입할 수 있고 무엇보다 작가들을 직접 만나서 현재 진행중인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이 매력적이다.
그 밖에도 강정마을의 평화정신을 전파하고 있는 인문학 서점 ‘달빛서림’, 여행자를 위한 책방 ‘라바북스’, 북스테이와 낭독회가 자주 열리는 ‘아라 서점’도 있다. 여행까지 와서 무슨 책방? 할런지도 모른다. 유명 관광지를 둘러보다가 사람에 치이고 풍경 또한 시들해질 때쯤 발길 닿는 대로 각기 개성이 다른 동네책방을 들러 보자. 작정하고 책방을 여행코스에 넣는 사람들도 있단다. 제주 여행의 또 다른 재미를 즐기는 법이다.
허순영 제주착한여행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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