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바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아트페어 ‘바젤국제아트페어(아트바젤)’이 19일 막을 내렸다. 올해로 47회를 맞은 아트바젤에는 전세계 33개국, 286개의 갤러리가 참여했다. 세계 미술시장 전반의 경기 둔화 우려 속에서도 6일 동안 9만5,000여 명의 관람객이 찾아 성황이었다.
올해 아트바젤에서는 유럽 난민 등 현실의 문제를 직시해 예술적으로 승화한 작품이 두드러졌다. 덴마크 작가 E.B. 잇소(E.B Itso)는 북아프리카 난민을 주제로 한 작품 ‘Shedding’(2015)을 선보였다. 과거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으로 낯선 땅에 도착하자 마자 옷을 벗어 던지는 난민. 잇소는 그들의 흔적을 푸른 색 물감으로 캔버스에 표현했다. “아주 끔찍한 장면을 아름답게 시각화했다”는 평을 받은 그의 작품의 수익금 중 일부는 관련 단체에 기부될 예정이다.
홍콩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30대 젊은 작가 샘손 영(Samson Young)은 시위대 해산에 주로 사용되는 음향대포(Long Range Acoustic Device, LRAD), 홍콩 경찰 제복을 입은 배우, 새 소리 등을 포함한 퍼포먼스 작품으로 홍콩 이주민 문제를 암시해 눈길을 끌었다. 전시 공간에 들어온 관람객을 촬영해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설치 작품 ‘줌 파빌리온(Zoom Pavilion, 2015)은 12개 카메라의 기록 앞에 선 관람객이 빅데이터의 위험성 등 사회 문제를 인식하게 했다. 마크 스피글러 아트바젤 디렉터는 14일 간담회에서 “(유럽 내 난민 문제가 심화하는 등)작년보다 훨씬 역동적인 상황 속에서 행사가 진행되는 만큼 현실반영적 성격의 작품을 많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키워드는 ‘제3세계’다. 중국, 남아메리카 등 미술 영역에서 제3세계에 머물렀던 국가를 배경으로 활동한 작가들의 작품이 본격적으로 조명 받았을 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소련의 대형 컬렉터들의 페어 참여가 증가하는 등 공급과 수요 측면에서 진정한 의미의 ‘세계화’가 일어나고 있음이 증명됐다.
아브라함 크루즈비예가스(Abraham Cruzvillegas) 등 남아메리카 작가의 작품을 대거 출품한 멕시코 시티 소재 쿠리만주또(Kurimanzutto) 갤러리 관계자는 “최근 남미 작가들에 대한 컬렉터의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며 “(그들이 갑자기 발전했다기보다)많은 작업들을 통해 다져온 그들의 실력이 이제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들만의 독특한 역사적 맥락과 경제적 상황이 작품에 스토리를 입히고 있다”는 전문가들의 의견도 이어졌다. 지아니 젯저 언리미티드 큐레이터는 16일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제3세계 국가들이 어떤 어휘로 어떤 주제를 표현하는지 주목해야 할 것”이라며 미술시장이 “드디어 ‘확실하게’ 세계화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폴 매카시, 아니쉬 카푸어 등 이름만으로 관객의 발길을 잡아 끄는 거장의 작품들도 전시장을 가득 채웠다. 아트바젤 기간 동안 바젤 내 미술관에서 전시되는 알렉산더 칼더(Alexander Calder) 작품도 대거 출품됐다. 관계자들은 “현재 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작가의 작품이나 유명 작가의 작품은 ‘상업성’을 담보해야 하는 아트페어에 소개되는 1순위”라며 “시장 경기에 대한 불안 탓인지 올해는 이미 시장에서 보증된 작품을 소개하는 경향이 더욱 짙어진 듯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아트바젤 측 역시 폐막 후 공식자료를 통해 “정치ㆍ경제적 불안으로 인해 ‘좋은’ 작품에 대한 수요가 강세를 이뤘다”는 분석을 발표했다.
미국 출신 미니멀리즘 조각가 솔 르윗(Sol Le Witt) 등 미술사적으로 큰 의미를 지닌 작품들도 많이 재조명됐다. 언리미티드 섹션에 솔 르윗의 작품을 두 개나 올린 지아니 젯저 큐레이터는 “(미술사적 중요성에 비해)일반에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들을 다시 방문해(Re-visit) 살펴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바젤=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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