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 의원의 새누리당 복당을 친박계가 막지 못했다. 친박계가 뽑은 비대위원들이 무기명 투표로 결정한 일이다. 유 의원 복당에 반대하는, 그래서 우리 편이라 믿었던 비대위원들 다수가 실은 복당에 찬성했다. 그러고 보면 이번 사태는 권력 끝자락이 보일락말락 한 시간에 세상이 권력을 배신해 가는 단면에 더 가까워 보인다. 길게 보면 모두가 시효 지난 권력에 등돌릴 때, 오히려 ‘정치인 박근혜’를 지지하고 옹호할 이는 유 의원일 수 있다. 지역 기반의 정치풍토에서 TK(대구ㆍ경북) 출신인 두 정치인은 2년 뒤 즈음 서로 필요한 위치에 있을 수 있다. 짧게 반복되는 권력의 새옹지마에서 친박들이 그때도 총대 멘 돌격대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번 자중지란을 겪으며 여권에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을 둘러싼 얘기는 더 진지해지고 있다. 대권에 출마하는 것은 그의 의지이겠으나, 유력 주자가 없는 친박들에게 그의 존재는 절실하다. 그가 거론되는 것조차 레임덕을 줄일 수 있는 청와대도 다르진 않다. 정권 연속성이 가능하다는 것만으로, 있는 자들의 등 돌리기를 지연시킬 수 있다. 그게 아니라도 반 총장의 투입이 유력하게 논의될 수밖에 없는 게 여권 구조는 바뀌지 않고 있다. 대권주자 인기를 주가 그래프로 분석할 때, 반등하던 우량주가 악재를 만나 급락세로 돌아서면 여간 해서 회복하기 힘들다. 지난 총선에서 참패한 여당의 급락주들은 2개월 넘게 추세 반전을 못하고 있다. 50대 잠룡인 도지사들의 조기 투입도 거론되지만, 이들이 현직을 버리는 베팅까지 기대하기는 어렵다. 차차기를 노리는 것이 현재로선 정수라는 얘기들이 많다.
세계 3대 정상에 미국 대통령, 교황, 그리고 유엔 사무총장이 꼽힌다. 상징성을 우선한 것이겠으나 실질적인 파워나 명예, 위상을 따져볼 때 3인 만한 이들이 없다. 3대 정상을 지낸 이들은 물러나도 그런 후광 속에 여생을 보낼 수 있다. 종신직인 교황을 제외하면 퇴임 대통령이나 사무총장이 되도록이면 정파를 떠나 사회통합이나 공익 활동에 나서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반 총장이 한국 정치판에 들어오려면 유엔 업무의 연장선에서 해석될 공적 명분이 필요한데, 현재 가장 근접한 구실은 북한 문제다. 정부가 북한을 옥죄면 옥죌수록 반 총장이 북한에 접촉할 기회나 명분은 많아진다. 벌써 북한은 반 총장에게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를 풀어줄 역할을 공개적으로 원한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변수는 유엔이 북한을 제재하는 국면에서 그 수장이 방북 하는 것에 미국이나 중국이 불편해 하는 점이다. 류제이 주유엔 중국대표부 대사는 반 총장의 방북에 ‘필연적인 조건’이 있어야 한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미국은 유엔 관련 비리 사건의 기소장에 반 총장이 해당 사건을 사전에 인지했을 수 있는 정황을 슬쩍 적시해 놨다. 반 총장이 미국 이해에 어긋나게 움직일 여지를 좁혀 놓은 것으로 외교가는 해석하고 있다. 물론 방북의 성과는 이런 문제를 일시 상쇄하겠지만, 그것이 세계 3대 정상에게 전업의 명분이 될지는 알 수 없다. 정치권의 요구가 커지는 상황에서 그가 풀어야 할 다른 문제는 의심 받는 권력의지다. 될 것 같지 않으면 나서지 않는 이른바 공무원 식 계산법에 대한 계속되는 지적은 반기문 효과를 반감시키는 요소다. 이런 점까지 고려한 그의 지인들은 대권에 눈을 돌리는 순간 유엔 사무총장이란 개인의 역사성은 줄어들 것이라고 안타까워한다. 5년 뒤를 생각할 때, 그가 차기 대통령을 한들 퇴임 대통령들이 걸어온 길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고도 한다. 역사에 유엔 사무총장으로, 아니면 대통령으로 기록되고자 하는지는 반 총장이 판단할 사안이다. 하지만, 그를 어떻게 기억할지는 그의 몫이 아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서울시장, 현대건설 회장, 성공한 샐러리맨으로 더 기억되고 있다.
이태규 정치부장 tg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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