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ㆍ2단계 피해자ㆍ가족 대상 설명
위자료 1억~1억5000만원 제시
피해자들 “돈으로 문제 덮으려 해”
땜질식 보상안, 사태만 악화시켜

폐 손상 성분이 들어있는 가습기 살균제로 가장 많은 피해자를 낸 옥시레킷벤키저(옥시)가 처음으로 보상안을 내놨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진정성이 없는 생색내기식 보상안인데다 3ㆍ4단계 피해자는 보상에서 제외됐다”며 반발했다. 결국 땜질식 보상안으로 사태만 악화시켰다는 지적이다.
19일 옥시에 따르면 아타 울라시드 사프달 옥시 대표는 18일 서울 서초구 더케이호텔에서 1ㆍ2단계 피해자와 가족 약 100명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열고, 정신적 고통에 따른 위자료 명목으로 1억~1억5,000만원을 지급하는 내용의 보상안을 제시했다. 교통사고나 산업재해로 사망했을 때 위자료 기준액이 1억원인 한국 법원 판례보다 보상액을 높게 책정해 최대 1억5,000만원까지 보상하겠다는 게 옥시 측의 설명이다. 또 과거 치료비와 향후 발생할 치료비, 장례비, 피해자가 건강했을 때의 추정 수입까지 산정해 보상하겠다고 밝혔다.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의 가습기 피해자 지원사업이나 국민건강보험공단 등에서 이미 치료비를 지원받은 경우엔 해당 금액을 옥시가 반환하기로 했다.
그러나 피해자들은 “2011년 사고 이후 질질 끌다 5년 만에 사과를 한 옥시가 이제 와서 돈으로 문제를 빨리 마무리 지으려는 것 아니냐”고 반발했다. 설명회에 참석한 피해자 김덕종(40)씨는 “법원 판례를 들면서 피해자들에게 마치 웃돈을 주는 것처럼 설명할 때는 위자료라는 단어가 무색했다”며 “지난 5년간 보인 무책임한 태도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아직 합의되지 않은 보상안 임에도 다음달부터 일괄적으로 피해 접수를 받겠다는 방침도 비판의 대상이 됐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 모임의 강찬호 대표는 “생활고에 시달리는 피해자들의 약점을 노린 옥시는 구체적인 금액을 언급하며 서둘러 돈으로 문제를 마무리 짓겠다는 생각밖에 없는 듯 했다”고 꼬집었다.
이번 보상안이 지난 정부 조사 때 ‘가습기 살균제와 폐질환과의 인과 관계 가능성이 낮거나 없다’고 판정된 3ㆍ4단계 피해자들을 배제하고 있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이은영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너나우리(3ㆍ4단계 피해자 모임) 대표는 “우리는 설명회가 열린다는 사실도 몰랐고, 설명회 현장 입장도 거부됐다”며 “가장 큰 가해 기업인 옥시가 피해 범위를 축소하면서 다른 기업들도 이 기준을 따를 가능성이 커졌다”고 말했다.
옥시 관계자는 “다음달 보상안을 확정 짓고 올해 안에 보상을 완료하는 게 목표”라며 “보상 신청 서류가 다 접수되면 90일 내에 보상을 완료할 것”이라고 말했다. 35명으로 꾸려진 지원ㆍ보상 전담팀이 피해자들과 개별적으로 접촉해 설명하고, 보상을 마무리 지을 계획이다. 3ㆍ4단계 피해자들의 보상과 관련해서 옥시 측은 “우선 1ㆍ2단계 피해자에 집중해 빠른 시일 내에 보상을 끝낸 후 순차적으로 진행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권영은기자 you@hankookilbo.com
장재진기자 blan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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