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부채 105조7,000억원, 자산 대비 부채 비율 466%, 하루에 내야 하는 이자만 100억원.
지난 2013년 국내 최대 규모의 공기업 LH의 재무 성적표다. 서민 주거 복지를 위해 임대주택 건설 사업을 해 왔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민간 기업이었다면 몇 번이라도 파산을 했어야 할 정도의 참혹한 성적이다.
부채 감축은 당연한 일이었다. 일단 금융부채가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에서 기존과 같은 방식의 사업을 할 수 없다는 게 LH의 생각이었다. LH 관계자는 “부채 부담을 이유로 사업 규모를 무조건 줄일 수도 없었다”며 “결국 사업방식의 다각화를 시도하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고 말했다.
LH가 시도하고 있는 민간공동주택사업은 이 같은 고민 끝에 나온 묘수였다. 민간공동주택사업은 간단히 말해, 땅을 가진 LH와 그 땅을 개발할 의지가 있는 민간건설사가 함께 사업을 한 뒤, 수익을 적절히 나눠 갖는 방식이다. LH 입장에서는 땅을 개발하고 나중에 주택을 분양하는데 투입되는 비용을 들이지 않아도 되고, 민간건설사 입장에서도 토지보상비 등 용지비용의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윈-윈(Win-win)’의 방식인 셈이다. LH 관계자는 “수익을 나중에 나눠야 하는 만큼 전체 파이는 기존 개발 사업보다 적을 수 있겠지만 그만큼 위험 부담도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며 “무엇보다 LH 입장에서는 나가는 돈을 줄일 수 있는 측면에서 부채를 줄이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성과는 좋았다. 최근 몇 년간 부동산 경기가 좋았다는 점도 감안해야겠지만, 2014년 첫 사업을 할 때부터 조짐이 좋았다. 대림산업과 함께 한 인천서창2지구 분양 당시 835세대 전량 판매를 기록했다. 가장 최근인 지난해 12월에도 대우건설이 참여한 화성동탄2지구 분양에서 913세대 모두 분양하는데 성공했다.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9개 사업이 있었는데, 한 곳(양산물금2지구 80% 분양)을 빼고는 모두 100% 분양이었다.
사업 성공과 함께 2014년 1,239세대였던 사업 물량은 점차 늘어 올해 8,246세대(계획)로 7배 가까이 늘어났다. “공공분양인 만큼 가격에 경쟁력이 있는데다 민간건설사의 브랜드를 그대로 사용한다는 점에서 인기가 높을 수밖에 없었다”는 게 LH의 자체 평가였다. 사업이 성공적이라는 평가가 나오자, 민간건설사의 참여도 높아졌다. 지난 3월 분당 LH사옥에서 진행된 행복도시 2-1생활권 사업에 대한 사전설명회에는 27개의 대형건설사들이 참여, 관심을 보일 정도였다.
LH는 민간공동주택사업에 약간의 변주를 주기 시작했다. 성과가 확인됐으니, 공공분양주택 외 임대주택사업 등에도 적용을 해보자는 취지였다. 지난해부터 장기공공임대주택사업에도 적용하기 시작했고, 올해부터는 오피스텔과 상업시설 등 비주거시설도 추진하기로 했다. 이들만을 따로 떼 사업을 할 경우 민간건설사에서 참여를 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서, 공공주택 개발에 패키지 형태로 이들 사업까지 함께 진행하는 식이다. 하남미사지구 등 2개 지구에서의 추진 계획도 이미 세워둔 상태다.
LH는 민간공동주택사업 외에도 여러 가지 사업 다각화에 나섰다. 작년 한해는 리츠(REITs)를 활용해 1.5조원의 현금흐름 개선을 거둘 수 있었으며 ▦대행개발 ▦민간공동 택지개발 등을 시도했다. 2조3,000억원의 사업비 감축, 3조8,000억원 규모의 현금흐름 개선은 이 같은 사업 다각화의 결과였다.
LH는 이와 함께 들어오는 돈을 늘리는데도 전력을 다했다. 판매 역량을 강화하는 게 우선이었다. 판매 목표 관리제를 도입했으며, 지역·사업본부별로 판매실적을 사내전산시스템에 실시간으로 공개하는 ‘판매신호등’ 제도를 운영했다. 사내 구성원들에게 긴장감을 심어주겠다는 의도였다. 결과적으로 지난해 토지·주택 판매액은 28조3,000억원으로 2013년 22조1,000억원에 비해 7조원 넘게 늘어났다. 최근 3년(2013~2015년)으로 보면 77조6,000억원에 달할 정도의 호조였다.
나가는 돈을 줄이고, 들어오는 돈을 늘이는데 성과를 보이면서 현재 LH의 재무 상태는 눈에 띄게 좋아졌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금융부채는 89조9,000억원로 줄었다. 2013년과 비교하면 15조원 이상 감축이 된 셈이다. 이 같은 부채 감축을 통해 아낀 이자 비용만 해도 연간 4,000억원에 달했다. LH 관계자는 “재무건전성을 강화하기 위해 대금회수 범위 내에서 사업비를 집행하는 등 부채가 추가로 증가하지 않는 선순환 사업구조를 마련해, 시행하고 있다는 게 지금 수치로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LH는 지난 2월 이사회를 열고 올해 16조2,000억원을 투입해 주택 7만9,000호, 토지 1,030만㎡를 공급하는 내용의 2016년 사업계획을 확정했다. 행복주택, 전세임대주택 등 공공기관으로서 해야 할 서민주거안정 사업도 차질 없이 추진할 계획이다. 저소득층 주거안정을 강화하기 위해 주거복지 분야 사업비 역시 작년보다 3,000억원 늘린 1조5,000억원으로 잡았다. LH 측은 “뉴스테이 등 정책사업을 추진하는 등 올해도 공공기관으로서의 공적 역할 수행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남상욱기자 thoth@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