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된 트럭은 나만큼 굼뜨지만
나보다 고장이 적어 기특한데
미세먼지 동조범 오르내려 불만
그저 남들 것처럼 생겼으면…
처음 양파 심을 때 소망했지만
바램 이뤄지자 기도문 바꾸기로
한동안 안 보이던 장씨아저씨
허리 수술 소식에 화들짝 놀라
은인들에 무심해 죄송한 마음
논이 궁금했다. 어젯밤 살짝 드러난 논바닥을 보고 놀라 물을 댔지만 내려오는 물은 양이 적었다. 큰일이다. 바닥을 드러낸 채 하루만 지나면 논에는 여지없이 잡초가 들어선다. 풀은 일단 한번 자리잡으면 어릴 적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땅 따먹기 하듯 조금씩 지 영역을 확장한다. 아침 안개가 살짝 내려 앉은 폼이 한낮 볕은 자갈도 녹일 판이고, 풀들은 보약 먹은 듯 자랄 것이다.
서둘러 트럭을 몰았지만 차는 나만큼이나 굼떴다. 하긴 지 나이도 14살이니 사람으로 치면 50줄에 접어든 내 나이는 된 셈이다. 잘 씻기지도 않고 좋다는 거 챙겨 먹인 적 한 번 없어도 나 보다는 고장이 덜한 게 오히려 기특하다. 미세먼지 주범은 누가 봐도 뻔한데, 동조범 정도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것이 불만일지 모르겠다. 살다가 고등어 같을 꼴 안 당하면 다행인줄 알아야지 어쩌겠나.
화엄사 길을 오르다 보니 논두렁에 못 보던 입간판이 보였다. ‘산체식당’. 스페인 음식점이 생겼나 하고 가다 보니 ‘산채식당’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말이 어려운 탓이다. 오래 전, 서울 탑골공원 근처 한 패스트푸드점 출입문에 무시무시한 경고문을 본 적이 있다. ‘사체업자 출입금지!’ 점 하나 잘못 찍어 돈 놀이 하는 사채(私債)업자가 사체(死體)를 다루는 사람으로 취급된 거다. 그에 비하면 ‘산체’는 귀여운 실수다. 모르겠다. 산채식당도 어쩌면 뭐든지 산 채로 먹는 식당일지도.
쓸데없는 생각하다 논에 도착하니 못 볼 것이 보인다. 그 새를 못 참고 풀이 솟았다. 뾰족뾰족 듬성듬성 얌체들 수염 모양이다. 우렁이를 투입하긴 했지만 얘들은 물 속에 잠긴 풀의 끄트머리부터 먹는다. 풀 끝이 물을 뚫고 나오면 절대 허리를 베어 먹지 않기 때문에 소용이 없다. 모내기 후 태평성대는 일주일 만에 끝났다. 그나마 작년보다 풀이 적을 것 같다는 근거 없는 예측으로 위안하며 농장으로 내려왔다.
장씨아저씨 논에서 누군가 비료를 뿌리고 있었다. 아저씨는 분명히 아니고 누군가 하고 유심히 보니 동생인 S형님이다. 아저씨 동생이 형님인 게 좀 이상하지만 아저씨와는 20살 차이가 나고 S형님과는 열 살 정도 차이이니 어쩔 수 없다. 최근 아저씨 발길이 통 없었다. 내가 농장보다 논에 많이 가 있었고, 트럭이 세워져 있지 않으면 들어오시질 않으니 그랬나 보다 했지만 그렇다 쳐도 뵌 지가 너무 오래됐다. 며칠 전에 농장을 지나치시는 아주머니에게 인사를 했지만 어색하게 대답만 할 뿐 눈도 안 마주치려고 하시는 모습이었다.
내가 뭐 실수라도 한 거 있나 생각해봤지만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지난번 감 밭 예초기 작업할 때 평소 베어드리던 아저씨 창고 앞길을 그냥 두었는데 그것 때문에 삐치셨을까? 그땐 대강 호밀만 벤 거라 곧 다시 작업할 때 베려구 한 건데… 아니면 작년에 호박 박스 20개 가져오고 돈을 안 드렸나?’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렇다고 어린 놈이 “아저씨 요즘에 왜 안 놀러 오세요?” 하고 전화하는 것도 건방져 보이고.
낼 모래 비 온다는 소식에 양파 밭에 앉아 캐기 시작했지만 왠지 심심했다. 장씨아저씨도 그랬고 주유소 일 때문에 바빠진 D동생도 마실이 뜸했다. 멀리서 트럭만 보이면 “뭐허요” 전화하던 H동생도 밀 수확하랴 급하게 모 심으랴 바쁜 듯 했다. 양파에 집중하려고 했지만 화만 올라왔다. 엊그제 장날 나온 양파들은 핸드볼 공 크기였는데 우리 것은 아주 커 봐야 야구공이다. 그 동안 뭐든 심고 뿌릴 때마다 기도를 했다. ‘그저 남들 것처럼 생기게만 해 주세요’ 하고 읊조려 왔다. 말 그대로 기도가 먹혔는지 생긴 건 똑같은데 크기가 달랐다. 남들보다 넣어주는 것이 적으니 당연한 결과인데도 기도문을 바꾸기로 했다. ‘똑같이 생기고 크기도 어떻게 비슷한 놈으루다가 해주시면 안될까요’
두번째 두둑이 조금 나았지만 도긴개긴이었다. 뻐꾸기는 제 짝을 다 찾았는지 소리가 줄었고 최근에는 꾀꼬리가 지척에서 울기 시작했다. 도입부를 낮게 깔다가 뒷부분을 조수미처럼 뽑아버리는데 사람도 홀릴 만 했다. 꾀꼬리 울음소리나 흉내 내며 양파를 캐고 있자니 더 심심했다. 외로움 타는 건가? 아니면 아침 기운도 영 떨어지는 것이 말로만 듣던 갱년기?
엊그제 TV에서 사람들이 ‘데미안’이라는 책과 청소년기 자존감에 대한 얘기들을 나누다가 누군가 “사회적 관계 속에서 자신이 얼마나 쓸모 있는 사람인가 하는 게 자존감의 척도가 된다”고 얘기했다. 어렸을 때 ‘데미안’인 줄 알고 ‘탈무드’를 읽은 뒤 그 탓인지 나도 자존감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쓸모 있는 사람인가?’ 자문했지만 자신 없었다. 뭐 딱히 남들에게 해를 입히고 살지는 않지만 또 그렇다고 누구한테 도움 주며 사는 것 같지도 않았다. 모기 한 방만 물려도 퉁퉁 붇고 체력이 약해서 쉬 지치는 아내에게 ‘어따 써 선생’이라는 별칭으로 부른 적이 있는데, 내가 그렇게 된 기분이다. 양파도 작고,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기운 빠진 채 ‘뽑고 자르고 담고’를 반복하며 양파 두둑을 조지고 있는데 농장 입구에 인기척이 있었다. 일어나서 보니 간전댁할머니가 한껏 차려 입고 들어오셨다. “어쩐 일이세요. 어디 다녀오시는 길이세요?” 할머니는 평소와 달리 서울 성북동 근처에서나 뵐 수 있는 노부인의 모습이었다. “교회 갔다 와요.” 역시 곱게 웃으셨다. “선재네 밭이 궁금해서……” 도와주러 오셨다는 말씀인데 뭔가 더 하실 말씀이 있는 듯 했다. “얘기를 해야 할랑가 모르겄는디……”
할머니 말씀은 이랬다. 농장에 심은 고구마 상태도 궁금하고 양파 캐는 것도 도와주고 싶어서 순천에 있는 교회에서 서둘러 오시느라 터미널에 내려 택시를 타셨는데 택시비를 낸 뒤 지갑을 두고 내리셨다는 거다. 지갑에는 10만원 가량의 현금도 있었단다. 나는 서둘러 장갑을 벗었다. “그게 해야 할랑가 모르실 말씀이 아니죠 할머니!”할머니는 말을 끝내지 못하셨다. “선재아빠 바쁜디 이란 일로 시간뺐으믄……”
할머니를 트럭에 태우고 터미널로 달렸다. 택시 번호판도 못 보셨다 하고 할머니를 태웠던 기사도 안 보였다. 대기하던 기사님을 붙잡고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무전기로 해당 기사를 찾아주는데 여러 차례 무전을 해도 응답이 없었다. 앞이 노래지는 그 때 화장실에서 나오던 기사가 할머니를 알아보고 세워져 있던 택시 바닥을 뒤져서 떨어져 있는 지갑을 찾아왔다. 천만다행이다. 차에 타고 돌아오는 길에 할머니는 나한테 미안해 했다. “괜히 일하는 사람 시간만 뺐고……” 교회 가시면서도 일복을 챙겨서 도와주러 오셨고,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 수백만원에 해당하는 돈을 잃을 뻔했는데 누가 고맙고 미안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양파는 채 200kg이 안 됐다. 우리 먹을 거 빼 놓고 모두 양파즙으로 내리기로 했다. 건강원에서는 양파가 작아서 즙 양도 적지만 물은 진하게 나온다고 했다. 그나마 다행이다. 한 숨 돌리고 농장으로 가는데 동네 친구로부터 전화가 온다. “나 냉천리 논에 좀 델다 줘.” 트랙터 작업을 하다가 두고 온 트럭을 가지러 가야 한단다. 친구네 비닐하우스로 가니 차에 타며 수박 한 덩어리를 뒷자리에 실었다. “맛이나 보라고.” 2년간은 수박으로 재미를 못 봤는데 올해는 좀 나을라나 싶어 시세를 물으니 쓴웃음이다. “오늘 시세 알아서 뭐해. 출하하는 날짜에 얼마가 될지 모르는데 뭐. 신경 안 써.” 어느 나라인지 외국 속담에 ‘머리 다치기 전에 붕대 감지 마라’ 하는 말이 있단다. 그가 옳다. “고맙네. 택시 부르기도 그렇고 부탁 편하게 할 사람이 자네 밖에 없어. 이따 저녁이나 먹세”
대강 씻고 나와 동네 형님까지 세 명이 김치찌개 집에서 곁들여 저녁을 먹었다. “참, 강샌이 딸딸이에 치어서 허리가 뿌라졌담서?” 평소 과장이 심한 W형이 말했다. 척추가 부러지면 사망하거나 하반신 마비가 올 텐데 확인해 보니 그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여기서 ‘딸딸이’란 벌목한 나무를 옮기기 위해 4륜 구동으로 불법 개조한 트럭을 말한다. ‘딸딸이’라는 단어가 참 많이 쓰인다. 청소년 성장기의 용어는 물론, 신발 경운기 불법개조트럭 장애인용 카트까지 쓰임새가 많아 본 뜻은 행간을 파악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딸딸이가 딸딸이를 받아서 딸딸이까지 날아갔구마” 해도 알아 들어야 한다. 마치 “거시기가 거시기헝께 거시기 해불구만”이란 말도 잘 알아듣는 것처럼.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한 친구는 택시비의 열 배를 지불하고는 나한테 잘 먹었다고 했다.
두 사람을 집 앞에 내려주고 논을 살피러 가는데 어둠 속에 웬 여인이 하얀 손수건을 흔들었다. ‘귀신은 아니겠지’ 하고 엉겁결에 세웠더니 냉큼 뒷자리에 올라탔다. “아이고 죽을 뻔 했구마. 나 집이 저 연파린데 좀 델다 주소”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전화기 배터리도 떨어져서 택시도 못 부르고 걸어가던 참이라고 했다. “연파리는 저 가는 데랑 반대 방향인데요” 어째야 하나 싶어서 말했더니 단호하다. “긍께요. 미안해서 어쩌까요.” 잔말 말고 차 돌리라는 얘기다. 머뭇거리니 확인 사살을 한다. “아들뻘 되는 거 같은디……” 체념하고 모셔다 드렸다. 아주머니는 차에서 내리면서 고맙다며 한 마디 더했다. “낭중에 읍에서 만나믄 내 밥 사께이” 깜깜한 밤에 뒷 자석에 탔다가 내리면서 어떻게 날 알아보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두고 온 것이 있어 농장으로 다시 가는데 D동생이 농막으로 찾아왔다. “행님, 들으셨대요?” 뭔 말인지 모르겠지만 흰 고무신 안에 신은 까만 양말이 눈에 거슬렸다. “야, 빽구두를 신으려면 양말 색이나 맞추든지” 면박을 줬더니 “요즘 유행하는 투톤이지라” 씩 웃는다. “그건 그렇고, 장씨아저씨 허리 수술하셨다는디요? 이달 초에 서울 가셨대요. 가 봐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랬구나’놀라서 바로 아저씨께 전화를 드렸다. “수술 잘 혔고, 신경 쓰덜 말어. 말 허까 하다가 괜히 걱정할까 봐 안 알리고 온 것잉게. 찾아올 생각은 허들 말고.”
참 무심했고 죄송하다. 심심하다고 칭얼대고, 갱년기니 자존감이니 헛소리나 하고 앉아 있었다. 악수하고 돌아다니거나 술 마시며 떠드는 게 관계인 줄 알았다. 티도 안 내고 생각해 주는 분 들이 계신데 말이다. 노고단 할매한테 혼날 일이다.
다시 기도해 본다. ‘오늘만 봐 주시면 안될까요? 모처럼 하루에 ‘고맙다’는 소리 세 번 들은 날인데. 그리고 웬만하면 논에 풀이랑 낼 모래 캘 감자 크기도 좀…’
정신 차리려면 멀은건가.
前 한국일보 기자 cameragag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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