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현대글로비스 수색 거울로
“그룹 자금 흐름 숨기는 데 활용”
계열사ㆍ해외법인과 거래 많고
비상장 상태인 계열사에 초점
롯데상사ㆍ로베스트 등 의심
자산관리 채정병 카드 사장 소환
롯데그룹 비리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배임혐의에 대한 단서들을 종합하는 한편 ‘비자금 저수지’를 찾는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17일 서울중앙지검 롯데 수사팀은 최근 채정병(66) 롯데카드 사장 및 이봉철(58) 정책본부 부사장등 신격호 총괄회장, 신동빈 회장 및 정책본부의 자산 관리를 맡았던 임원들을 불러 조사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비상장 계열사의 주식 거래,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오너일가 소유의 부동산 거래 등 배임 혐의에 대한 분석과 함께 임원급 관계자 조사를 통해 의심스러운 자금과 오너 일가의 관련성을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팀은 현대차 비자금 수사의 원동력이 된 현대글로비스처럼 비자금 조성의 핵심이 될 만한 롯데 계열사를 찾는데 주력하는 것으로 관측된다. 2006년 3월 26일 대검 중수부는 서울 용산구 현대글로비스의 사장 집무실 압수수색을 통해 벽 속에 있던 금고에서 60억여원의 비자금을 찾아냈다. 수사 초반 관계자들은 현대글로비스와 관계사들의 불법 자금으로 예상했으나 현대기아차 기획총괄본부 등이 조직적으로 개입해 정치권에까지 건네진 그룹 차원의 비자금 일부로 밝혀지면서 검찰 특수수사의 대표적 사례로 자리매김했다. 2005년 말까지 비상장사였던 현대글로비스는 사실상 정몽구 현대차 회장과 정의선 기아차 사장의 2인 기업으로, 계열사ㆍ해외법인 간 거래를 통해 자금 흐름을 숨긴 ‘비자금 저수지’로 이용됐다.
롯데 수사팀 역시 비상장 상태로, 계열사ㆍ해외법인 간 거래 비중이 높은 관계사들을 살펴보고 있다. 중국 등 동남아시아 시장 진출을 위해 자금을 투자했으나 막대한 손실이 발생한 롯데쇼핑의 홍콩법인인 롯데쇼핑홀딩스, 롯데케미칼의 수조원대 원료 수입을 대행하면서 일본계열사를 개입시킨 롯데상사, 계열사 주식을 부풀려 판매한 신격호 총괄회장의 스위스 특수목적법인(SPC) 로베스트가 유력한 후보로 꼽힌다. 상장 계열사(8개)의 10배에 달하는 80개의 비상장 계열사를 운영하면서, 베일에 싸인 일본법인을 통해 그룹을 지배하고 있는 롯데의 구조를 감안하면 이 같은 비자금 조성 모델이 유효하다는 게 검찰 안팎의 분석이다.
다만 롯데 수사는 초반부터 다수의 증거인멸 정황이 드러나면서 비자금 추적에 장애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검찰에 따르면 롯데 정책본부는 검찰 수사를 예상하고 이미 4월부터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꺼내 파기했다. 앞서 있었던 압수수색 과정에서도 전문프로그램을 이용해 전산 자료를 삭제하거나 차량으로 문서 등을 빼돌리고 하드디스크를 감춘 사실이 드러났다. 조원일 기자 callme11@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