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원장 반발ㆍ정치권 발목에
지원액 96%로 다시 높이고
종일반 다자녀 기준도 2명으로 완화
여-야-정부 시행 전 검토 합의
맞벌이 가정 홀대 해소 못하고
예산 절감 효과도 없어져
표를 의식한 정치권의 흔들기로 보육 정책이 오락가락하고 있다. 종일 돌봄이 꼭 필요한 이들에게 우선적으로 12시간 무상보육을 보장하기 위해 추진한 맞춤형 보육에 대해, 정치권이 시행을 늦추자고 발목을 잡더니 어린이집 지원액도 다시 높이기로 했다. 어린이집 원장들의 반발을 의식한 결과다. 예산은 예산대로 쓰고, 혼선만 가중될 상황이다.
17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맞춤반(6시간 반일반)에 대해 정부가 지원하는 금액은 최대 종일반(12시간)의 96%정도로 계산된다. 정부는 맞춤형 보육이 시행되면 맞춤반에 대해 종일반의 80%에 해당하는 보육료만 지원할 계획이었다. 0~2세 기준 종일반 보육료는 82만5,000원, 맞춤반은 66만원이 된다. 하지만 어린이집 원장들이 지원금이 깎이는 데에 크게 반발하며 23~24일 집단휴원까지 예고하자 더불어민주당이 “시행을 연기하라”고 주장하는 등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결국 16일 민생경제현안점검회의에서 여야정은 지원금 중 기본 보육료(39만5,000원)는 그대로 유지하고 부모 보육료(43만원)만 80%로 낮추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합의했다. 이 경우 맞춤반 지원금은 73만9,000원이며, 맞춤반 부모에게 추가로 제공되는 월 15시간 긴급바우처를 다 사용할 경우 총 79만9,000원이 지원된다. 종일반 지원금과 2만6,000원(4%)의 차이가 날 뿐이다. 여야정은 또 홑벌이라도 종일반에 자녀를 맡길 수 있는 다자녀 기준을 3명에서 2명으로 완화하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정부가 맞춤형 보육을 시행키로 한 것은 ‘어린이집에 안 보내면 손해’라는 인식으로 소득이나 필요성에 상관없이 어린이집에 몰리는 부작용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다. 가정육아가 바람직한 영아까지 어린이집에 보내고, 보육료는 같은데 아이를 오래 맡기는 맞벌이 가정이 홀대 받는 일이 생겼다. 일부 어린이집 원장은 전업주부의 자녀를 유치하기 위해 혈세로 지원받은 보육료 일부를 뒷돈으로 건네기도 했다. 때문에 정부의 계획이 수정돼 종일반과 맞춤반 보육료 차이가 거의 없어지면 이 같은 부작용이 해소되기 어렵다. 예산 절감 효과도 없어질 판이다. 복지부에 따르면 맞춤반 보육료를 80%로 설정할 경우 375억원 예산이 절감되지만, 그 폭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오히려 전업주부와 워킹맘 사이의 갈등, 종일반 자격을 증명하기 위한 불편만 초래하는 셈이다.
표를 의식해 견고한 설계 없이 무상보육을 추진하면서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것은 정치권이다. 2012년 18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여당은 0~2세 무상보육을 3~5세보다 앞서 실시하기로 밀어붙이는 바람에 위와 같은 부작용을 낳았다.
정부가 학부모와 어린이집 등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맞춤형 보육의 방향은 맞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서영 한경대 아동가족복지학과 교수는 “처음 무상보육을 도입할 때 반일반만 전 영유아에게 무상 지원하고 종일반, 시간 연장제 등은 부모가 선택해서 소득에 따라 비용을 부담하게 했어야 한다”며 “충분한 논의와 예산 고려 없이 무턱대고 무상보육을 도입한 결과 이 같은 갈등과 재정압박을 초래했다”고 비판했다.
채지선 기자 letmekno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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