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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으로서 ‘감히’ 인류학에 한 획을 그은 커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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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으로서 ‘감히’ 인류학에 한 획을 그은 커플

입력
2016.06.17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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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거릿 미드(왼쪽)와 루스 베네딕트. 한국일보 자료사진
마거릿 미드(왼쪽)와 루스 베네딕트. 한국일보 자료사진

마거릿 미드와 루스 베네딕트

로이스 W 배너 지음ㆍ정병선 옮김

현암사 발행ㆍ816쪽ㆍ3만2,000원

이토록 절절한 연구서, 아니 학구적 연애담이 또 있을까. 두 사람은 친구, 연인, 선후배이자 사제, 학문적 동지였고 영혼의 반려자였다. 섬세한 시적 감수성이 돋보이는 역작 ‘국화와 칼’을 고전 반열에 올린 루스 베네딕트, 젠더 연구에 한 획을 그으며 문화인류학의 대모로 불렸고,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살았던 마거릿 미드.

‘마거릿 미드와 루스 베네딕트’는 두 학자에게 영향을 끼친 성장 배경, 인물, 사상 등을 통해 이들의 성취와 사랑을 조망한 평전이다. 세간에 비정상으로 비칠지 언정, 지극히 아끼면서도 서로의 다른 사랑을 지켜보기 일쑤였던 두 사람이 숱한 부침을 거쳐 서로를 인정하는 과정은 한 편의 드라마에 가깝다.

젠더 관습을 넘어 유대하며

국적ㆍ인종ㆍ계급ㆍ나이...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 짓는

모든 경계에 물음 던진 두 학자

저자 로이스 W 배너는 역사학자이자 젠더학자다. 미국 남캘리포니아대 교수로 미국학협회 첫 여성회장을 지냈다. 20년 넘게 미드와 베네딕트에 관심을 가져왔고 2004년 이 책을 내놨다. 대학 및 의회 도서관 등이 보관하던 미드의 대외비 문서 상당량이 탄생 100주년을 맞은 2001년 전후로 학자들에게 공개된 게 계기였다. 공립 도서관, 교회, 학회에서 베네딕트 관련 문서도 발굴했다. 그간 알려지지 않은 두 사람의 서신, 서류철을 망라한 저자는 “참조한 거의 모든 문서 컬렉션에는 학자들의 연구 손길이 닿지 않았다”며 소위 결정판을 써냈다는 뿌듯함을 감추지 않는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미드가 버나드대에 재학하던 1922년 한 수업에서다. 15세 연상의 베네딕트는 길 건너 컬럼비아대 박사과정생으로 이 수업 조교였다. 베네딕트와의 교류 속에 인류학이 지성과 상상력을 다양한 방식으로 결합할 수 있음을 깨달은 미드는 그녀를 동경했고, 베네딕트 역시 쾌활한 미드에게 애정을 쏟았다.

둘의 관계는 당시 다른 여성들이 맺은 소위 낭만적 우정, 성애적 우정, 사랑처럼 이성애나 결혼을 질서 정연한 사회의 필수 요소로 여긴 상태에서 이어진 것이었다. 그 스스로 ‘여성성’으로 대변되는 기질들을 사랑하기도 했고, 1920년대 후반 미국 사회의 동성애 적대가 점점 더 심화했던 것도 한 원인이 됐다. 미드는 남편 루서 크레스먼과 결혼 중 여러 여성들과 연애했고, 베네딕트와 깊은 교류 중에도 결정적 순간에 번번이 남성과의 결혼을 택했다. 베네딕트는 한때 미드가 안정감과 신뢰를 주는 반려자가 되길 바랐지만 미드의 남편과 사랑을 경쟁하고 싶지 않다며 그녀에게 자유를 줬고, 이후로도 둘은 감정적, 정신적, 지적으로 더 단단하게 유대했다.

학문과 생애에 상당시간 궤를 함께 한 두 사람은 모두 ‘미국식 인류학’을 출범시킨 프란츠 보애스의 제자로 미국에서 원주민 보호주의와 인종 차별주의에 처음 반기를 든 인류학자였다. 다수 여성 사회과학자들이 대학이 아닌 사회사업 분야로 떠밀리듯 진출했고, 남성 전용으로 여겨지던 대학 교수 화장실조차 마음껏 드나들 수 없던 시절이었지만, ‘감히’ 학계의 주류에 편입했고 학문의 일가를 이뤘다.

베네딕트는 미국 문화의 공격적 남성성과 물질주의를 비판하며, 미드는 문화는 학습과 교육에 의해 형성되며, 상대적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가운데 각각 학계의 주목을 받았지만, 공통되게 천착한 주제는 한 사회에서 “비정상”으로 분류되는 것이 다른 사회에서는 지극한 정상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두 학자의 학문적 성취를 소개하는 동시에 20세기 인류학의 주요 흐름도 꼼꼼하게 다뤄 지적 포만감을 준다. 선조와 성장기를 소개하는 대목이 지나치게 친절해 완독하는데 인내심을 요하지만, 막상 덜어냈으면 하는 부분은 드물다.

국적, 인종, 성별, 나이, 계급을 넘어 인간 존재 그 자체를 탐구, 이해, 규정, 사랑하는데 온 생을 바친 두 학자의 면모는 읽는 내내 가슴을 덥힌다. 우정, 존중, 동경, 사랑 등 어떻게 호명하든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정성을 다하는 이런 모습을 “비정상”이라는 이름으로 재단하고 단죄하려 드는 것은 얼마나 비루한 시도일까.

“미드, 너의 사랑 속에서 행복할 때는 노래를 해. 우울할 때도 너의 사랑 때문에 세상이 여전히 살 만하다고 말이야.” “루스, 당신을 알게 된 일은 신이 존재함을 안 것과 같은 평화로운 축복이에요.”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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