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상 마흔이 되고 보니, 예상과 달리 기분이 꽤 그럴 듯 하다. 한숨 푹 자고 일어난 것처럼 개운하고 얇은 허벅지에도 괜히 불끈 힘이 들어가면서 비로소 진짜 삶을 시작해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대폭발하지 않으면서, 무기력하지도 않은 소박한 자유를 향해 나아가보려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소박한 텃밭을, 세상의 멱살을 잡고 조금씩이나마 끌어가며 나날이 갈아보기로 하자.”
해서 책 제목 ‘무기력 대폭발’은 쉼표를 추가해 ‘무기력, 대폭발’이 어울릴 듯 하다. 20대가 대폭발이었고 30대가 무기력이었다면, 40대엔 이제 그 간격이 눈에 들어온단 얘기일테니. 그 덕에 언뜻 피곤에 절어서 축 늘어진 듯한 인상을 풍기는 제목과 달리, 책 내용은 잔잔한 희망으로 가득하다.
“세계는 폭우가 쏟아지는 밤이다. 어두워서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가운데, 사람들은 저마다 지식이나 재산, 종교나 가족 등 그 어떤 이름이 붙은 우산을 하나씩 들고 절박하게 매달려 있지만, 결국은 젖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결국은 젖을 수 밖에 없다는 걸 받아들이기 시작하는 그 순간부터, 우리의 삶은 비로소 진짜가 된다.” 이 진짜의 삶을 알게 된 이상 이젠 “세상을 더 낫게 만들겠노라 얼굴에 잔뜩 인상을 쓴 채 역사의 진보나, 개발, 이념이나 전략을 들먹이며 화살을 엉뚱하게 주변 사람에게 겨냥하는 이들과 마주칠 때면 그들의 선의와 관계없이 자꾸만 그들 때문에 세상이 더 추레해지는 것 같아 불편해진다.”
대신 저자가 제안하는 건 ‘다정’이다. “쿨(cool)과 핫(hot) 사이에 웜(warm)이 있다. 냉정과 열정 사이에 다정이 있다. (중략)인간과 사회는 저마다 적정 체온을 유지해야 한다. 사상이나 지식의 깊이를 떠나 지식인의 사명은 잔소리가 아니라 실천일 것이다. 그것도 다정한 실천!”
그래서 저자는 바위를 끊임없이 다시 밀어 올려야 하는 시지프를 ‘행복한 시지프’라 부른다. 이 시지프는 아마 다시금 밀어 올려야 할 바위를 앞에 두고 제 운명에 대한 고뇌와 한탄을 뱉어내는 쪽이라기보다, 뜻 밖에도 다정한 손길을 내밀어 바위를 쓰다듬을지도 모른다. 그게 대폭발과 무기력을 넘어선, 40대가 이 세상의 멱살을 틀어쥐는 방식일 게다.
저자는 출판사 호밀밭 대표이자, 각종 문화기획자이자, 사회적 기업인으로 현재 주업은 사회학 강사인 장현정. 음반도 낸 적 있는 음악인이기도 하다. 해서 글 곳곳에 음악 얘기가 배어 있는데 호주 원주민 출신 시각장애인 가수 구루물(Gurrumul)의 음악은 추천하고 싶다. 책은 그간 신문이나 잡지에 정색하고 쓴 글 뿐 아니라 이런저런 메모, 언제 썼는지도 모를 낙서 등을 한데 끌어 모은 ‘잡문집’을 표방했다. 다만 글들이 다들 너무 착한 점은 다소 불만이다. 좀 쌉싸름한 블랙 유머를 곁들였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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