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세계사 1ㆍ2
마이클 파이 지음ㆍ김지선 옮김
소와당 발행ㆍ각권 1만8,000원
‘북유럽 세계사 1ㆍ2권’은 여러 층위에서 감상할 수 있는 책이고, 그런 점에서 아주 좋은 책이다.
우선 근대의 기원 문제다. 제목대로 책은 5~15세기 무렵 북해를 둘러싼, 지금의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독일, 네덜란드, 벨기에, 잉글랜드 등을 아우르는 북유럽을 다룬다. 지금이야 ‘해리 포터’, ‘반지의 제왕’ 같은 판타지물이 인기를 얻고, 노동ㆍ육아ㆍ교육의 모범사례로 늘 언론사 기획 취재의 단골 레퍼토리로 떠올랐으며, 단순 소박한 맛을 자랑하는 실용적 가구나 인테리어가 각광을 받고 있다. 북유럽은 그야말로 ‘꿀 바른 이상향’이다.
그러나 북유럽은 원래 야만이었다. 여름이면 해가 지지 않고 겨울이면 해가 뜨지 않는, 저지대라 물까지 쉽게 들이치는, 그래서 황량하고 어둡고 습한 대지에 기괴한 괴물들이 살고 있는 곳이었다. 술 퍼 마시고 강간과 노략질을 일삼던 기골장대한 붉은 머리 인간들이 바이킹이란 이름으로 바다를 휩쓸고 다녔다. 로마제국마저 포기하는 바람에 10세기 이후에 그나마 문명이라 부를 만한 것이 나타난 곳이다.
저자는 역설적으로 이런 조건 때문에 생존을 위해서라도 개인을 중시하는 생활방식, 거래와 신용의 필요성, 화폐ㆍ보험의 발생, 도시의 형성 같은 근대적 요인이 발생했다고 주장한다. 근대의 기원으로 거론되는 16세기 남유럽의 르네상스보다 한발 앞섰다는 얘기다. 세상은 교양 넘치는 위대한 지식인들의 거창한 그리스ㆍ로마 고전에 대한 사랑 때문에 바뀐 게 아니라 “바다를 통한 끊임없는 교류, 뭔가 다른 식으로도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어렴풋한 지식”으로 변했다는 얘기다. “북해의 회색 빛 차가운 바다 언저리에서, 낡고 하찮고 유행에 뒤떨어진 것들이 현대의 우리의 모습을 만들었다. 훨씬 더 좋은, 훨씬 더 많은, 훨씬 더 나쁜 모습으로.”
두 번째. 그래서 중세의 복권이 확연하다. “로마제국과 17세기 암스테르담의 제국적 위용, 그 둘 사이에는 1,000년이 넘는 간극이 있다. 이 두 장면 사이 무심코 암흑기라고, 중세라고 부르는 시대가 있다. 우리는 그 시대가 오직 성채와 처녀들과 기사들과, 그리고 아름답게 채색된 필사본으로만 구성되어 있었다고 알고 있다. 마치 인간의 창의력, 사악함, 의지가 수백 년 동안 유예되기라고 했던 것처럼. 마치 삶이 장식으로 변해버리기라도 했던 것처럼.” 앞서 봤듯 ‘중세=암흑기’는 오해다. 자랑스럽진 못할 지 모르나 중세는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세계의 “길었던 아침”으로 해석돼야 한다.
세 번째는 상업이냐 농업이냐다. 저자는 ‘북유럽의 상업’, ‘남유럽의 농업’이란 대립 구도를 만들어낸다. 쌀을 주식으로 삼은 ‘평화로운 반만년 백의민족’임을 주문처럼 외워온 우리는 무조건적으로 농업을 더 좋은 것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현대 민주주의를 만든 이들은 ‘북유럽의 상업’에 기반한 스코틀랜드 지식인들이다. 이 때문에 철저한 이해타산이라는 ‘상업적 냉정’을 기초로 하는 민주주의가, 씨족 중심 공동체에 뿌리박은 ‘농업적 열정’에 휩쓸리는 우리에게 잘 들어맞을 수 있겠느냐는 최장집(고려대)의 물음이 다시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네 번째로 상업과 농업의 대비는 최근 브렉시트 논란과 유로 위기를 둘러싼 독일 중심의 북유럽과 그리스ㆍ스페인 중심의 남유럽간 대립구도를 떠올리게 한다. 저자는 유대인 차별 문제까지 함께 넣어서 ‘북유럽 상인’이 ‘남유럽 농업’을 어떻게 의심하고 무시하고 괴롭히는지 여기저기서 서술하고 있는데, 이 구도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것 같아 한편으론 흥미롭고, 한편으론 씁쓸하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매혹적인 서술 방식이다. 통사는 어느 왕이나 세력이 뭘 하고, 어떤 큰 사건이나 전쟁이 벌어졌고, 무슨 제도와 법이 만들어졌는지를 다룬다. ‘역사=죽어라 외우는 과목’이란 공식이 생긴 이유다.
그러나 저자는 생활문화사 방식을 택했다. 누구나 알만한 인물이나 사건이 아니라 어느 시골 수도원에 들렀던 이가 남긴 여행기나 편지, 궁벽한 산촌에 살았던 가난한 농부가 남긴 가계부, 법정에서 자신의 절절한 사연을 호소했던 어느 아낙네의 진술서, 유물 발굴 과정에서 고고학자들이 밝혀낸 10세기 북해 해안가 어민의 생활상 등이 서술의 토대다. 눈에 딱 띄는 걸 뽑아서 압축적으로 기사 쓰고 제목 달기 좋아하는 기자로서는 그리 달가운 서술법이 아니다. 이미 눈치챘겠지만 그래서 1ㆍ2권 합쳐 600쪽이 넘는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구체적 사례를, 이 기사에서는 단 한 줄도 언급하지 않았다.
이런 서술 전략은 출판사 너머북스가 내놓는 ‘하버드 중국사’시리즈 가운데 ‘원ㆍ명 곤경에 빠진 제국’에 비견할 만하다. 명나라 1급 전문가로 꼽히는 티모시 브룩은 통사의 키워드를 ‘용의 출현’으로 잡았다. 서양과 달리 동양에서 용은 물을 뜻한다. 농업사회에서 물, 즉 용은 아주 중요하다. 브룩은 용이 출현한 시기, 즉 물에서 문제가 생긴 시기를 중심으로 환경 변화, 생산 변화, 농민의 움직임, 왕조의 대응을 절묘하게 섞어 쓰면서 기존 인물, 사건 중심의 서술을 가볍게 뛰어넘는다. 워낙 탁월한 방식이라 역사를 이렇게 쓰고 가르칠 수도 있겠구나 싶은데, 이 책도 여기에 뒤지지 않는다. ‘유관순 누나’ 없다고 역사 교과서가 틀렸다는 단순 논리가 참 부끄러워진다.
물론 반론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일화 중심 서술이다 보니 개별 일화들이 얼마나 시대를 대표하며 지속적이었는지 확언하기 어렵다. 또 누구 말마따나 역사가 ‘도전과 응전’이라면, 저자 서술의 무게는 ‘응전’쪽으로 기울어 있다. ‘총 균 쇠’의 제래드 다이아몬드식의 지리환경결정론인 셈인데, 이에 대한 논란은 이미 충분히 많다. 북해의 복잡하고 정교한 교역망이 근대의 씨앗이었다는 주장도 그렇다.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교역, 화폐, 신용, 보험이 발달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도 익히 경험한 ‘자본주의 맹아론’에서 보듯 ‘맹아’란 대단히 자의적이며 자기만족적인 개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서술 덕분에 책을 덮으면 이 세상을 조금 더 알게 된 것 같고, 또 조금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역사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다가올 휴가철에 반드시 챙겨갈 만한 책이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