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7월의 어느 무더운 날 글항아리의 첫 책 ‘나무열전’을 낸 지 벌써 9년이 지났다. 참 시간 빠르다. 이 책의 저자 강판권 계명대 교수는 전 직장에서 알고 지내던 분이었다. 강 선생이 우리의 첫 저자가 된 사연은 다음과 같다.
출판사를 하기로 마음먹은 2007년 2월 전국 순회여행을 했다. 부산, 전주, 광주 등지를 다니며 그간 인연이 있었던 분들에게 원고를 주십사 요청 드렸다. 다들 밥은 흔쾌히 사주셨는데 원고엔 난색을 표했다. 이미 계약된 타 출판사 원고도 못 넘기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예상은 했지만 실망도 컸다. 올라오는 길 대구에 들러 강판권 선생을 만났는데, 그 자리에서 완성된 원고를 내미시는 게 아닌가? 당시 그는 ‘어느 인문학자의 나무 세기’ 등으로 인문 독서시장에서 떠오르는 필자였다. 감사하기 이를 데 없었다. 원고는 청소년과 대학생을 대상으로, 나무의 한자 이름 유래를 재미있게 밝히는 내용이었다. 저자가 내민 A4 원고뭉치 겉면에 ‘숲으로 떠나는 한자여행’이라는 제목이 보였다. 그걸 안고 다시 파주출판단지의 조그만 우리 사무실로 돌아왔다.
당시 우리에겐 전 재산과 다름없던 그 원고를 붙들고 고민을 시작했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우선 저자께 동의를 구하고 이 책의 독자층을 약간 높여서 잡았다. 30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인문학 이론보다는 국학과 역사, 자연 등에 눈을 떠가던 나는 책의 방향이나 구성이 참 만족스러웠다. 내 나이 또래나 그 위를 주 독자층으로 겨냥하는 게 맞겠다 싶었다.
하지만 그러기엔 정보량이 부족했다. 그래서 아이디어를 낸 게 책에서 다루는 각 나무마다 끝에 조그마한 ‘사전’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가령 복숭아나무라면 ‘도桃’와 다른 한자가 결합해 이뤄진 여러 합성어들을 망라하여 정리해줌으로써 해당 나무가 우리 문화권에서 어떤 의미로 퍼져 있는지 알려주려고 했던 것이다. 그 다음은 원래의 장절 외에 중간중간 삽입되는 10개의 별도 꼭지를 만들었다. 나무와 문학작품의 관련을 다루기 위해서였는데, 이걸 작성하기 위해 도서관에 서 시와 소설을 어지간히 뒤적거렸던 기억도 난다.
편집 막판에 제목을 정하는 일은 우연하게도 쉽게 풀렸다. 당시 읽고 있던 책이 사마천의 ‘사기열전’이었던 터라 여기서 열전을 따와서 ‘나무열전’이 되었다. 원래 원고에 붙어 있던 제목은 ‘나무에 숨겨진 비밀, 역사와 한자’라는 부제로 바뀌었다. 이 제목을 두고 어떤 이가 구식 같다고 해 불끈하기도 했고, 초판 3,000부가 많다며 2,000부만 찍으라는 충고도 무시하고 3,000부를 강행했다. 그만큼 많은 공을 들였고 자신도 있었다.
다행히 반응이 괜찮아 그 해 5,000부 넘게 판매됐고, 지금까지 1만3,000부 이상 팔린 롱셀러로 자리 잡고 있다. 책의 판권 면에 저자와 출판사 임직원의 성이 모두 ‘강씨’라 한 집안 아니냐는 오해도 여러 번 사기도 했다. 엊그제 같지만 벌써 9년 저쪽이 되어버린 첫 책의 달콤한 추억이다.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