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학의 거의 모든 역사
제임스 르 파누 지음ㆍ강병철 옮김
알마 발행ㆍ668쪽ㆍ3만3,000원
‘현대의학의 융성과 쇠퇴’로 직역해 봄직한 이 책의 원제는 ‘The Rise and Fall of Modern Medicine’으로 영국에서 1999년에 출판되었고, 2005년에 우리말 번역서가 ‘현대의학의 역사’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원저의 꾸준한 인기를 바탕으로 12년 만에 영국에서 개정판이 나오자, 이번에 알마에서 ‘현대의학의 거의 모든 역사’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출간됐다. 개정판은 초판에 70쪽(번역본 기준) 가량의 에필로그를 덧붙여 가장 최근의 의학계 현황까지 그려내고 있다.
이 책은 꽤 두꺼운 편임에도 불구하고 무척 재미있게 읽히는데 그 이유는 상이한 요소들 즉 드라마틱한 요소, 비판적 요소, 논쟁적 요소들의 적절한 혼합이 저자의 유려한 글쓰기 솜씨에 잘 녹아 들어 있기 때문이다.
1부에서 저자는 1941년의 페니실린의 발견부터 1984년 헬리코박터균의 발견까지 대략 50년에 걸쳐 현대의학의 괄목할 만한 성취를 ‘열두 가지 결정적 순간’으로 이름 붙이고, 그 생생한 드라마의 현장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젊은 의사 배리 마셜은 환자에게서 헬리코박터균을 채취해 자신이 직접 삼켜 자기 몸의 변화를 지켜봤다. 세균의 감염이 몸에 미치는 영향을 알기 위해서였다. 1978년 세계 최초의 시험관 아기를 탄생시킨 밥 에드워즈와 공동연구자 패트릭 스텝토는 7년 동안 헤아릴 수도 없는 참담한 실패를 견뎌냈다. 하지만 이들의 연구는 그 이후 20년에 걸쳐 4만 건의 임신이라는 성과로 이어졌다. 심장을 열어젖히고 심실과 심방 사이의 벽에 생긴 결손을 교정하거나 판막을 교체하는 개심술이 가능하게 한 주인공인 존 기번은 자신과 친구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 전문가 집단의 냉소와 회의주의에 맞선 그의 외로운 연구는 결국 심장수술에 큰 진전을 가져왔다.
끝이 없을 것처럼 보이던 의학 발전의 행진은 어느덧 보이지 않는 장벽에 부딪친다. 제2부 ‘번영’을 지나 제3부 ‘낙관주의 시대의 종말’에서 저자는 흔들리는 혁신, 신약 부족 사태, 기술의 실패, 임상과학자의 멸종 등을 근거로 현대의학이 수렁에 빠졌음을 증언한다. 눈에 띄는 높은 봉우리를 모조리 정복한 나머지 치료 혁명은 휘청거리고 성공을 거듭할수록 발전이 제한되고 있었다. 저자는 현대의학이 지난 50년에 걸친 놀라운 성공에도 불구하고 네 겹의 모순 즉, “직업적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의사, 건강에 대해 더욱 걱정하는 대중, 넘쳐나는 대체의학, 이해할 수 없이 급증하는 보건의료 비용”에 싸여 있다고 지적한다.
질병 퇴치와 신약 및 신기술 개발에 헌신하던 무수한 소영웅들의 시대가 가고, 생물학을 중심으로 한 유전체학이 의학과 통합되면서 거대과학이 탄생되고, 잇따른 블록버스터 약물로 대박을 터뜨린 거대 제약회사의 과점적 지배 하에 환자들은 과잉 진료와 높은 의료비에 허덕이고, 의료진은 아무런 보람도 느끼지 못하고 점점 돈벌이의 노예로 전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의학계와 의료계, 특히 거대 제약회사(‘빅 파마’)에 대한 저자의 비판은 통렬하다. 하지만 현 시기를 정체의 시기가 아닌 몰락의 시기로 보는 것이 과연 타당한지, 역학(疫學)과 유전체 생물학에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 정당한지는 의문으로 남는다.
과학책 읽는 보통 사람들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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