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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해운 사태와 같은 앞으로의 위기를 극복할 원칙부터 세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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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해운 사태와 같은 앞으로의 위기를 극복할 원칙부터 세워야”

입력
2016.06.17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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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끝>전문가 좌담회

국책은행의 부실기업 지원 악순환 고리 끊어야

실업ㆍ고용대책 턱 없이 부족

실업대책은 산업보다 지역을 타깃으로..

구조조정 큰 밑그림을 만들어야

권영준 경희대 교수, 박진 한국개발연구원 교수, 성태윤 연세대 교수,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왼쪽부터)가 9일 서울 세종대로 한국일보 본사에서 진행된 전문가 대담에서 최근 산업 구조조정 현안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홍인기 기자
권영준 경희대 교수, 박진 한국개발연구원 교수, 성태윤 연세대 교수,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왼쪽부터)가 9일 서울 세종대로 한국일보 본사에서 진행된 전문가 대담에서 최근 산업 구조조정 현안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홍인기 기자

정부가 구조조정과 산업개편의 고삐를 죄면서 위기업종이 차례로 수술대에 오르고 있다. 그 끝이 어디일지, 후유증은 얼마나 될지 공포는 점점 커지는 양상이다. 한국일보는 9일부터 6회에 걸쳐 우리보다 앞서 구조조정과 산업개편의 길을 걸었던 스웨덴 핀란드 독일 미국 중국 등의 생생한 현장을 조명, 이들의 고민과 나름의 해답을 소개했다.

이제는 우리가 어디쯤을 걷고 있는지 정확히 파악하며, 미래의 상생을 위한 이정표를 세워야 할 시점이다. 구조조정, 산업개혁, 실업대책의 전문가들이 모여, 한국적 상황에 해답을 모색했다. 9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한국일보 본사 17층 회의실에서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좌담회에는 박진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권영준 경희대 경영학과 교수,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전문가들은 “부실기업에 세밀한 검토 없이 묻지마 식 과잉 지원을 해 온 것이 문제의 핵심”이라며 “외환위기를 거쳤으면서도 또 다시 큰 그림 없이 대처하다 위기를 초래한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이번 조선ㆍ해운 구조조정을 원만히 진행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를 통해 앞으로 닥칠 더 큰 위기를 극복할 원칙을 세워나가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성태윤=우선 조선ㆍ해운업 상황이 악화된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 평가부터 해보자.

박진=무엇보다 세계적으로 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과도한 투자를 한 측면이 강하다. 그 여파가 후폭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봐야 한다. 대표적으로 대우조선해양을 보면 해양플랜트라든가 오만 선상호텔사업 등 무모하다고 할 정도의 과잉투자가 있었다. 올바른 경영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민영화가 되지 않아 주인이 없는 상황이 16년간이나 이어진 결과 아니겠는가.

권영준=시장의 급격한 상황 등은 우리가 컨트롤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경영진 등의 도덕적 해이는 지적 받아 마땅하다. 도가 지나쳤다. 임원들이 회사 사정과 별개로 고액의 성과급이나 월급을 챙겨왔다. 이런 상황에서는 올바르고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배규식=해양플랜트 산업 실패를 지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해양플랜트 산업은 기존에 조선업과는 많이 달라서 또 다른 노하우가 필요한 것은 물론, 실패에 대한 위험 부담도 더 큰 분야다. 우리는 시공 기술은 분명 강점으로 가지고 있었지만 엔지니어링이나 설계 능력에서는 많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었다. 과도한 자신감을 가지고 무모한 도전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정부도 당연히 잘못이 있다. 해양플랜트를 새로운 먹거리라고 부추겼던 게 바로 정부였다.

성태윤=조선ㆍ해운업계가 비틀거리면서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에 여파가 미쳤다.

박진=결국 부실기업에 과잉 지원을 해 온 것이 지금의 상황을 초래했다. 대우조선해양이 주인이 없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경영 판단을 하지 못했던 것처럼, 산업은행 역시 마찬가지라고 본다. 이 참에 부실기업에 대한 국책은행의 역할을 대폭 축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부가 산업정책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시절은 이미 지나갔다. 구조조정 대상 기업을 국책은행이 지원하면서 부실해지고, 정부가 국민의 혈세를 부실 국책은행에 투입하는 문제 해결 방식은 더 이상 안 된다. 구조조정은 정부가 할 것이 아니라 금융기관이 주도하는 게 올바른 방향이다.

권영준=공감한다.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이미 청산을 하든지 시장원리에 따른 결정을 내렸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 국책은행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민영화를 포함해 산업은행이 금융전체 시스템에서 정말 필요한지 여부, 더불어 산업은행의 역할 등을 정밀하게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성태윤=정부가 국책은행 자본확충, 조선 3사 설비ㆍ인력 감축, 특별고용지원업종 지정 등 대책을 내놓았다.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박진=구조조정을 위한 재원조달 방안이 대책의 핵심이 됐는데,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는 걸 인정한다. 한국은행을 끌어들인 것도 정부로서는 지금 상황에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국책은행 자본확충펀드에 들어갈 신용보증기금의 지급보증 비용을 정부가 아닌 한은이 내도록 한 것은 적절하지 않다. 정부가 일을 벌이고 한은에 책임을 떠 넘기는 구도다.

권영준=불황이 심화되면 2020년까지 조선3사에서만 최대 8만명이 일자리를 잃게 된다고 하면서 조선업을 특별고용지원업종을 지정한다거나 울산ㆍ거제 등 조선업 지역의 경제 활성화를 위한 지원을 강화한다는 방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알맹이는 빠져 있다고 본다. 일자리를 잃게 되는 사람들, 특히 특수용접 등 기술력을 가진 조선산업의 근로자들에 대한 고용 유지 대책은 반드시 포함됐어야 한다고 본다.

배규식=실업ㆍ고용대책이 부족하다는데 공감한다. 실업급여 연장이라거나 직업훈련 제공 등의 방안이 제시가 됐지만 고용 유지 측면에서 보면 턱없이 부족하다. 핵심인력과 기술자들을 고용시장에서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일본의 경우를 예로 들 수 있다. 1970년대 조선소 규모를 30% 줄이는 구조조정을 했는데, 지금 조선업 관련 숙련 노동자들이 부족하다고 아우성이다. 고급 기술자들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 낼 수 있는 게 아니다.

성태윤=그렇다면 어떤 실업대책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조선ㆍ해운 외에도 다른 업종에서의 구조조정도 잇따를 수 있는데.

박진=일단 철강 쪽은 조선업 구조조정의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건설이나 석유화학이 조금 나아지고 있지만, 이 쪽도 전반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봐야 한다. 먼저 조선 해양에서 나오는 인력을 타깃으로 한 실업대책에 매몰돼서는 절대 안 된다. 전반적인 구조전환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배규식=구조조정이 있으면 지역별로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다. 지역별로 어떤 영향이 있을지 등 주요 산업이 근간이 되는 지역에 대한 대책을 긴밀하게 논의해야 한다. 경남 같은 곳을 보면 지방자치단체에서 아이디어가 있어도, 경험도 없고 집행 여력도 없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기업과 노사 등 이해당사자들이 같이 모여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박진=조선뿐 아니라 앞으로도 산업개편 과정에서 크고 작은 구조조정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후 발생하는 실업문제는 특정 지역에서 문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 실업대책은 산업보다는 지역을 타깃으로 해야 한다고 본다.

성태윤=마지막으로 당부할 말이 있으면 해보자. 기업구조조정과 산업개편이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는데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얘기해보면 좋겠다.

권영준=조선업 구조조정 얘기를 다시 한 번 하고 싶다. 구조조정을 어떤 규모로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좀 더 필요하다. 아직 조선업이 우리에게 필요한 부분이 있다. 어떤 부분을 살릴 것이고, 보호할 것인지 전체적인 밑그림이 빨리 만들어져야 한다.

박진=정부의 무책임한 간섭이 없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다. 개별 기업의 자구노력으로 (구조조정을) 한다는 원칙을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데, 좀 더 확실한 메시지를 줄 필요가 있다. 앞으로의 구조조정은 정부가 할 것이 아니라 금융기관이 주도하는 게 바른 방향이다.

배규식=우리가 구조조정이나 산업개편의 경험이 없다고 하는데, 외환위기 당시나 그 이후 이런 저런 기업구조조정이 있었다. 다만 단기적으로 큰 그림 없이 진행을 하다 보니 경험이 적립돼지 않았던 것뿐이다. 이번에는 우리의 원칙과 방향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구조조정 파고에 피해를 누군가가 고스란히 뒤집어 쓰는 경우가 생기면 안 된다.

정리=남상욱 기자 thoth@hankookilbo.com

김진주 기자 pera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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