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만 떠돌던 심판계의 상납 구조가 낱낱이 드러났다.
부산지방검찰청 외사부(김도형 부장검사)는 프로축구연맹 전 심판위원장 A(58)씨와 B(54)씨를 배임수재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16일 밝혔다. 작년 말과 지난 5월에 불거진 프로축구 K리그 경남FC, 전북 현대 구단과 심판 사이의 검은 커넥션에 이어 심판위원장까지 연루돼 충격이 크다. A씨는 프로연맹 심판위원장(2008~11)으로 재직하던 기간 K리그 심판 최모(41)씨로부터 15차례에 걸쳐 1,250만원을 받았다. 검찰은 공소시효(7년)가 지난 혐의를 제외하고 400만원만 기소했다. A씨 뒤를 이어 2014년까지 심판위원장을 맡은 B씨는 최씨에게 10차례에 걸쳐 850만원을 받았다. 최씨는 주심으로 더 많이 배정되고 매년 말 평가에서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해달라며 돈을 건넸다. 2013년까지 심판들은 체력단련비조로 월 100만원과 경기에 배당돼야만 일정 금액의 출전수당을 받았다. 지금은 체력단련비를 없애는 대신 수당이 약 25% 올랐다. 어찌됐든 경기 배정을 못 받으면 수입이 뚝 떨어지는 구조인 건 마찬가지다.
B씨는 또 2014년 11월 경남FC 코치 김모씨로부터 “판정에 불이익이 없도록 해 달라”며 300만원을 받아 국민체육진흥법 위반이 추가됐다. 윤대진 부산지검 2차장검사는 이날 브리핑에서 “사건은 모두 2014년 이전이다. 프로축구는 2015년부터 컴퓨터로 자동 심판 배정을 하고 많은 자정 노력과 제도 개선 중이다”고 강조하면서 다른 구단이나 감독, 관계자 등으로의 수사 확대에 대해서는 “계획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혹이 몇 가지 있다.
최씨만 돈 줬을까
심판이 자신의 생명줄과 다름없는 배정권을 쥔 심판위원장에게 금품과 향응을 제공한다는 이야기는 자동 배정 시스템이 도입되기 전인 2014년까지 파다했다. 한 전직 프로축구 심판은 본보와 인터뷰에서 “위원장이 지방에 가서 술 마시면 심판들이 줄줄이 와서 계산한다. 그런 심판들이 배정을 잘 받는다”며 “선배들은 나에게도 ‘저렇게 해야 성공 한다’고 조언했지만 못 하겠더라”고 털어놓았다. 이번 검찰수사로 최씨의 혐의만 밝혀졌지만 많은 축구인들은 여기서 자유롭지 못한 심판이 더 있을 거라 보고 있다.
최씨에게도 배임 증재(공소시효 5년) 혐의가 적용될 수 있지만 검찰은 추가 기소는 없다는 방침이다. 윤 차장검사는 “계좌추적도 늦게 진행됐고 최씨가 자수 형식으로 수사에 적극 협조했다. 공소 시효가 지난 것도 있다”고 설명했다. 최씨는 작년 말 경남FC의 심판 매수 사건으로 기소된 4명의 심판 중 유일하게 항소했다. 이번 수사에 적극 협조한 점이 항소심에 영향을 미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위원장도 구단 돈 받아
또 하나 눈여겨볼 대목은 B씨가 구단으로부터 직접 돈을 받은 점이다. 지금까지 구단 돈을 챙긴 사람들은 모두 일선 심판이었다. 심판위원장의 금품 수수는 처음 적발됐다.
심판위원장의 막강한 영향력을 고려하면 자신에게 돈을 준 구단 경기에 자기 입맛에 맞는 심판을 배정하거나 경기 전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을 개연성이 충분하다. 이는 심판에 의한 승부조작으로도 연결될 수 있는 사안이라 사실로 드러나면 파장이 엄청날 전망이다.
B씨는 부인하고 있다. B씨는 그 해 말 재혼을 했는데 축의금조로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축의금이라기에는 너무 액수가 커 신빙성은 낮다. 일단 윤 차장검사는 “돈을 받고 특정 심판을 그 경기에 배정하는 등의 혐의는 없었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돈을 건넨 코치 김씨에 대해 “기소 여부를 검토 중이다. 코치의 돈이 개인 돈인지 등을 확인할 계획이다”며 추가 수사 가능성을 내비쳤다. 향후 B씨에게 흘러간 돈의 출처와 성격에 따라 축구계가 또 한 번 요동칠 수 있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부산=정치섭 기자 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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