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이 전방위 패권경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티베트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까지 나서 갈등을 부채질하고 있다. 미국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사적으로 달라이 라마를 만났다고 양해를 구했지만 티베트 독립에 민감한 중국은 강력 반발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15일 백악관에서 달라이 라마와 회동했다. 두 지도자의 만남은 2009년 오바마 대통령 취임 이후 네 번째다. 조시 어니스트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달라이 라마가 올랜도 총기참사와 관련해 애도의 뜻을 표시했고 오바마 대통령은 감사의 뜻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어니스트 대변인은 중국의 반발을 의식한 듯, 이날 회동이 ‘사적인 만남’이라는 점을 누차 강조했다. 그는 “티베트가 중국의 일부라는 미국의 정책은 바뀌지 않았다”며 “일례로 공식 집무실이 아니라 맞은 편의 백악관 관저(1층 맵 룸)에서 만난 것은 이번 회동의 개인적 성격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어니스트 대변인은 이어 “오바마 대통령은 티베트의 독립을 지지하지 않았다”며 “오바마 대통령은 달라이 라마의 가르침에 감사했고 티베트의 종교ㆍ문화ㆍ언어전통을 보존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백악관은 두 사람의 회동을 언론에 공개하지는 않았으나, 백악관 전속 사진기사가 찍은 장면은 백악관 온라인 사진 공유사이트를 통해 공개했다. 공개된 사진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회동 장소로 입장한 달라이 라마의 양 팔을 껴안으며 반갑게 맞이했다.
중국은 그러나 이번 회동 자체가 미중 사이의 신뢰ㆍ협력을 훼손하는 것이라며 강력 반발했다. 미국이 티베트의 독립을 지지하는 것으로 비쳐질 수 있다는 점을 의식한 것이면서 동시에 최근 안보ㆍ통상분야 갈등현안을 두고 잇따라 자국을 압박하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여긴 것이다.
때문에 중국 측은 이번 회동을 ‘내정 간섭’으로 규정했다. 루캉(陸慷) 외교부 대변인은 16일 정례브리핑에서 미국을 향해 “시짱(西藏ㆍ티베트) 문제를 이용해 중국 내정에 간섭하는 행위와 양국 협력에 악영향을 주는 행위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그는 두 사람의 회동에 대해 “형식에 관계없이 미국이 ‘티베트의 독립과 중국 분열 활동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관영매체들도 일제히 나섰다. 신화통신은 “미국 정부는 티베트의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깨뜨렸다”면서 “어떤 나라도 중국의 내정에 간섭할 권리가 없다”고 강조했다. 환구시보도 “‘중국의 평화적 굴기(堀起)를 환영한다’던 오바마 대통령이 반복적으로 달라이 라마를 만나는 건 말의 신뢰도를 깎아먹는 행위”라고 날을 세웠다.
중국의 이 같은 격한 반응은 이달 말 남미 순방길에 미국을 경유하게 될 차이잉원(蔡英文) 대만총통이 오바마 대통령을 만날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경고의 측면도 있다. 중국 입장에선 미국이 자국에 대한 압박 차원에서 대만이나 티베트 문제에서 사실상 ‘하나의 중국’ 원칙을 훼손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워싱턴=조철환 특파원 chcho@hankookilbo.com
베이징=양정대 특파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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