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망주를 키우지 않고 눈 앞의 결과물만을 보고 특별귀화를 시킨다면 한국 동계스포츠 저변은 고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언 발에 오줌 누기에요.”
특별귀화를 바라보는 한 동계종목 지도자의 날 선 비판의 목소리다. 여자농구 첼시 리(27)의 혈통 사기극이 동계종목의 특별귀화 문제로 불똥이 튀고 있다. 최근 승인되거나 추진되고 있는 특별귀화의 대부분이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겨냥한 동계종목 선수들이기 때문이다. 비인기종목의 저변 확대라는 순기능에 비해 특별귀화 이상 열풍이 몰고 올 부작용이 더 크다는 반대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대한체육회는 지난 1일 독일 여자 루지 선수 에일린 프리쉐(24)의 특별 귀화 심사를 통과시켰다. 프리쉐는 법무부의 최종 승인을 받으면 태극마크를 달게 된다. 프리쉐는 독일 루지 유망주로 주목을 받았지만 독일 대표팀 내 경쟁에서 밀리면서 지난해 선수 은퇴를 선언했다. 프리쉐의 특별귀화가 승인되면 평창 올림픽에서 한국 여자 루지 대표팀은 사터 스테펜 감독을 중심으로 코치와 선수 모두 독일인으로 꾸려진다.
프리쉐에 앞서 동계종목에서 특별귀화를 통해 한국인이 된 선수는 모두 10명이다. 아이스하키가 7명으로 가장 많다. 브락 라던스키(캐나다), 마이클 스위프트(캐나다), 브라이언 영(캐나다), 마이크 테스트위드(미국), 맷 달튼(캐나다), 리건 에릭(캐나다), 캐롤라인 박(캐나다 동포 2세) 선수가 특별귀화 허가를 받았다.
쇼트트랙 분야에서는 대만 국적의 화교 3세인 공상정이 유일하다. 바이애슬론에는 러시아 출신의 안나 프롤리나와 알렉산드르 스타로두벳츠가 지난 3월 특별귀화 허가를 받았다. 이들 가운데 공상정을 제외하면 9명은 모두 평창 올림픽을 겨냥해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평창올림픽이 가까워 오면서 앞으로 특별귀화를 원하는 선수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피겨 아이스 댄스의 키릴 미노프(러시아)와 알렉산더 갬린(미국) 등도 특별 귀화를 위해 접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첼시 리의 사기극이 드러나면서 특별귀화 이상 열풍이 몰고 올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귀화를 원하는 선수는 대부분 자국 내 국가대표 선발 경쟁에서 밀려난 경우가 많다. 그래서 대회 출전자격을 얻고 개인의 메달 획득을 위한 도구로 한국행을 선택한 선수가 적지 않다는 우려가 있다.
특히 특별귀화는 원래 국적을 포기하지 않고 복수국적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외국인 선수들에게 손해 될 것이 하나도 없다. 평창 올림픽 이후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하고 자국으로 돌아가더라도 아무런 제약이 없다. 한 스포츠 관계자는 “귀화는 그저 국적 하나를 취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일원으로서 함께 하겠다는 사회적 약속과도 같은데 단순히 용병 개념으로만 접근하고 있다”며 “오히려 열악한 환경에서도 최선을 다하고 있는 국내 선수들의 동기를 저하시키고 그나마도 취약한 저변을 더욱 약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평창 올림픽을 앞두고 급하게 추진되는 특별귀화는 올림픽이나 스포츠의 근본 가치에도 위배된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김유겸(서울대 체육교육과) 교수는 “올림픽을 앞두고 급하게 귀화한 선수들에게는 국민들이 ‘동일시(Identification)’를 느끼기 어렵기 때문에 메달 획득이 주는 자긍심 고취나 화합과 같은 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면서 “어떻게 해서든 금메달을 따기만 하면 된다는 승리제일주의는 올림픽이나 스포츠의 근본 가치와 거리가 멀고 더 이상 국민 정서와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김기중 기자 k2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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