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이 기승을 부리던 시절에 어느 외진 시골 마을이 있었다. 먹을 것도 없고, 아픈 곳을 치료할 곳도 없는 이 마을에 모처럼 화려한 공연을 자랑하는 유랑단이 왔다. 재주를 펼쳐놓으며 다른 지역에서 구해온 음식을 소개한다. 마을 사람들은 삼삼오오 공터에 있는 유랑단을 찾아 이게 무언가 기웃거렸다. 2일 동안 머물던 유랑단은 다른 지역에도 가야 한다며 급하게 떠났다. 여기서 문제를 하나 풀어보자. 그렇다면 이 마을은 유랑단 방문을 통해 무엇을 얻었을까. 소득 증진? 문화적 결합? 마을 필수 기반시설 개선? 초등학생이 풀어도 답이 나오지 않을 질문이다. 오랜 가난에 시달리던 마을이 필요로 하던 건 유랑단이 아니고, 지속적인 관심이기 때문이다.
생각만 해도 낯 뜨거운 오류가 2016년에도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외교부가 박근혜 대통령의 우간다 방문을 기념해 한국형 개발협력 모델로 추진했던 ‘코리아 에이드(Korea Aid)’ 사업이 그런 경우다. 외교부 설명에 따르면 코리아 에이드란 현대식 이동 차량에 보건, 문화, 음식 관련한 지원 물품을 싣고 마을을 돌아다니며 서비스를 제공하는 새로운 형태의 원조사업이다. 그러나 빈곤이란 1, 2일간의 방문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지역의 경제적 자립기반을 세우는 데는 십수 년에서 수십 년이 필요하고, 시설 인프라만 제공한다고 해도 최소한 몇 년이 필요하다.
더욱 실소가 나는 건 제공하는 서비스 내용이다. 아프리카의 우간다에 왜 비빔밥과 닭고기 덮밥을 제공하는 것일까. 음식이란 지역의 문화이자 삶의 방식이다. 해당 지역의 음식이 아니라 한식 중심의 음식을 제공하는 건 일회성 외부 문화 체험에 불과하다. 게다가 빈곤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단순 물품 지원이 아닌 지역의 식량자립가능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농업기술을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국내산 쌀과자와 비빔밥이 필요한 게 아니다.
의료 사업도 마찬가지다. 한 번 가고 나면 언제 다시 올지도 모를 이동식 의료서비스는 지역민들의 기대치를 충족시키기 어렵다. 상시 운영되는 의료시설과 인력 양성이 우선이다. 적지 않은 질병이 예후까지 봐야 하는 장기 치료가 필요하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그러나 코리아 에이드는 일회성 진찰 서비스와 함께 약품, 보건키트 제공 등을 주 내용으로 한다. 문제의 원인 파악조차 틀렸다. 심지어 초음파 기기를 통해 태아의 모습을 사진으로 제공하는 것을 고려하겠다고 하니 실소를 넘어 우울해지기까지 하다. 세계 최고 수준의 영유아 사망률을 낮추기 위해 필요한 것이 과연 초음파 사진일까.
문화사업 역시 K-Pop, 평창동계올림픽 등을 포함한 한국문화와 관광 영상을 상영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제 곧 우간다에서도 “두 유 노우 싸이?”가 유행어처럼 번질지 모르겠다. 한류산업과 해외 원조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외교부는 이러한 코리아 에이드가 새마을운동이 글로벌 운동의 초석이 될 것으로 호언장담한다. 새마을운동을 “한국의 정신혁명” 평가했던 박근혜 대통령의 인식의 연장선상으로 보인다. 새마을운동이 국가의 대중동원체제 구축에 불과하다는 평가는 차치하더라도, 한국 문화 체험이 새마을운동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도 이해하기 어렵다.
국제사회는 지난 2015년 해외 협력과 빈곤 퇴치를 위해 지속가능발전 목표에 합의했다. 다양한 내용이 있지만 그 기준은 명확하다.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해당 국가가 경제적으로나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인프라를 갖출 수 있도록 서로 조력하는 것이다. 코리아 에이드나 새마을운동은 이 기준에 들어맞는 것이 하나도 없다. 지금은 1970년대도 아니고, 정부가 장돌뱅이여서도 곤란하다. 코리아 에이드 사업을 폐기하고, 국제기준에 맞는 방안을 강구하기를 간절히 고대한다.
이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에너지시민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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