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직에서 일하며 은퇴를 앞두고 있는 부부가 이사한 집을 기습하다시피 방문했다. 그들이 초대라는 형식으로 남을 집으로 부를 사람이 아니라서 마음먹고 불쑥 찾아간 것이다. 늘 검소하게 사는 그들이 다른 이들에게는 마냥 베푸는 모습을 많이 봐서 짐작은 했지만, 더없이 만족한다는 그들의 새 보금자리는 한마디로 평범했다. 출발부터 자신의 분야에서 독보적 존재였던 부부 모두 오랫동안 한 직장에서 성실하게 일해 왔다. 그 때문인지 인테리어를 일절 추가하지 않고 분양 받은 대로 입주해 살고 있는 그들의 검소한 집은 격조 있는 사람처럼 아름답게 느껴졌다. 늦게 결혼한 그들에겐 아들이 하나 있다. 그 청년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저절로 미소 짓게 된다. 청년은 자신의 부모가 행여 시시한 사람이 될까 봐 늘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것. 그로서는 표 나지 않게 부모를 감시하는 모양인데, 똑똑한 부모가 그것을 못 느낄 리 있을까. 자신의 부모가 혹시라도 정의롭지 못한 일을 하며 몰락해 갈까 봐 지켜보고 있는 젊은이가 있다는 사실은 흐뭇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그 한 청년으로 인해 곧 도미노 현상을 일으킬 것 같은 현실이 지금처럼 아슬아슬하게나마 유지되고 있다고 느꼈다. 권력을 가진 부모에게 정의로운 자식보다 더 무서운 감시자는 없을 테고, 하나같이 부정적 전망을 쏟아내는 이곳의 바람직한 변화는 그들에 의해서 앞당겨질 것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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