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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인심은 성게국에서 난다

입력
2016.06.16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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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게 국수. 성게 육수에 미역을 넣으면 성게 미역국, 국수를 말면 성게 국수가 된다.
성게 국수. 성게 육수에 미역을 넣으면 성게 미역국, 국수를 말면 성게 국수가 된다.

‘바다의 호르몬’으로 불리는 강장식품

성게미역국 등 만들기 어렵지 않아

육수만 잘 끓이면 응용메뉴 여러 가지

제주도에서 성게는 1년 내내 시장에서 구할 수 있는데 5월 중순부터 7월 사이를 제외하면 냉동 성게라 보면 된다. 일반적으로는 생 성게가 가장 맛이 좋다고 알려져 있다. 껍질을 깐 성게는 색이 노랗고 진한 게 좋으며 알이 풀어지지 않고 단단하며 윤기가 있는 것을 골라야 한다. 산지에서 생 성게를 구매한 경우라면 바닷물에 보관해야 성게 알의 형태가 오래 유지되며 일반적으로 2~3일 정도 보관이 가능하다. 씨알이 좋은 성게 알은 길게 열흘까지도 회로 먹을 수 있으나 가급적 바로 섭취해야 신선한 맛을 즐길 수 있다.

‘바다의 호르몬’이라고 불릴 만큼 강장 식품인 성게는 단백질과 각종 비타민이 등이 많이 함유되어 혈액의 흐름을 좋게 한다고 한다. 특히, 비타민 A가 많아 야맹증 예방과 시력 향상은 물론 피부나 점막을 건강하게 유지시키고 노화 방지와 암 예방에도 효과적이라고 한다. 또한, 사포닌 성분이 들어 있어 결핵이나 가래 제거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열량이 낮아 다이어트에도 효과가 있으며 미역과 함께 국을 끓이면 산모 산후 회복 및 알코올 해독에도 도움을 준다.

제주도에서는 성게 알을 넣고 미역과 함께 끓인 국을 별미로 여겨 손님에게 대접하는데, “제주도 인심은 성게국에서 난다”라는 속담도 전해지고 있다. 정약전의 ‘자산어보’에도 “맛이 달고, 날로 먹거나 국을 끓여 먹는다”고 전하는 것을 보면, 예나 지금이나 인기 있는 먹을 거리였음을 알 수 있다.

제주도 성게 음식 중 가장 많이 알려진 음식은 구살국이라고도 불리는 성게 미역국과 성게 국수이다. 두 음식 모두 성게 육수를 기본으로 미역을 넣었는지 아니면, 국수를 말았는지의 차이지 거의 같은 음식이다. 제주도에서 성게 미역국을 처음 접해본 지인들이 그 맛에 반하여 매우 만들기 어려운 음식일 것이라고 추측하는데 사실은 아주 간단하다. 육수만 잘 끓이면 응용해서 만들 수 있는 성게 음식이 여러 가지가 더 있다.

우선 육수는 2~3인분 기준으로 물 1리터에 성게 알 100그램을 넣고 한소끔 끓인 뒤 성게를 건져내면 된다. 일반적으로 식당에서는 조개 분말을 약간 넣고 소금으로 간을 하는데 맛의 깊이는 바지락이나 모시 조개를 10~15알 정도 넣고 함께 끓여내는 것이 시원한 맛을 더해 준다. 하지만 감칠맛 때문인지 많은 사람들은 조개 분말을 넣은 육수를 조금 더 선호하기는 한다. 육수에는 냉동 성게를 사용하기 때문에 해동을 한 뒤 냄비에 넣게 되는데 해동하는 도중에 성게 알이 녹아 버려서 끓이고 나면 모양은 흐트러지지만 육수에는 향이 많이 배게 되고 해동을 하지 않고 끓이면 성게의 형태는 유지가 되지만 맛이나 향은 아무래도 부족하다.

육수가 완성되면 건져낸 성게 알에 가시가 남아 있는지 손가락으로 세심하게 확인하고 제거해야 한다. 물에 불린 미역을 참기름에 살짝 볶은 뒤 육수를 넣고 끓이기만 하면 성게 미역국이 되고 국수를 삶아 당근, 실파, 김 가루, 삶은 성게 알을 고명으로 올려 육수에 말아 먹으면 성게 국수가 된다. 일부 식당에서는 육수에 홍합이나 다른 해산물을 넣어 제공해 주기도 하는데 다른 해산물과 섞이면 성게 고유의 향을 잃게 되어 피하는 것이 좋다.

성게 비빔밥
성게 비빔밥
성게 알을 넣은 해물 뚝배기
성게 알을 넣은 해물 뚝배기

초 여름에는 성게 비빔밥과 성게 솥밥도 별미다. 맛깔스러운 해초에 당근, 양상추, 오이를 채로 썰어 신선한 성게 알을 넣은 뒤 부추나 달래를 넣은 간장 양념장에 김 가루와 따뜻한 밥을 쓱싹쓱싹 비벼 먹으면 입안에는 고소한 바다 향기가 가득하게 되며, 솥밥이 뜸이 들기 시작할 때 성게 알을 넣어 밥을 지으면 구수한 성게 솥밥이 된다. 솥밥 역시 봄에는 달래 양념장에 비벼 먹고 달래가 없는 계절에는 부추로 양념장을 만들어 비벼먹으면 부드럽고 개운한 성게의 진미를 느낄 수 있게 된다.

로제 파스타에 성게를 올려 짜장면처럼 비벼먹는 파스타도 인기다.
로제 파스타에 성게를 올려 짜장면처럼 비벼먹는 파스타도 인기다.

우도 성게를 고집하는 지인이 운영하는 식당에서는 제주의 명물인 해물 뚝배기 위에 신선한 성게 알을 듬뿍 넣어 섞어 먹을 수 있도록 제공하는데 단연 인기 메뉴로 찾는 손님들이 많다. 한식이 아니라도 오래 전부터 생크림에 성게 알을 넣어 크림 소스를 만든 뒤 스파게티 면을 섞어 끓여 만든 우니 크림 파스타가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요즈음에는 로제 파스타에 신선한 성게를 올려 짜장면처럼 비벼먹는 파스타도 새롭게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제주도 음식은 요리법이 간단할 뿐 아니라 여러 가지 양념을 한꺼번에 섞어 사용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양념이 귀하기도 했지만 바다에서 생산되는 신선한 해산물을 언제든지 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양념을 많이 하지 않아도 재료 자체의 풍미로 인해 맛깔스러운 음식을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척박한 자연 환경에서만 볼 수 있는 소중한 식재료를 얻기 위해 수 십 번을 바닷물 속으로 들여가야 하고 손에 찔려가며 성게 알을 발려내야 하는 고통도 감수해야 하지만 일련의 과정을 거쳐 거센 바닷속에서 밥상에 오른 성게 음식을 통해 제주도의 생활상과 문화를 다시 되새기게 된다.

이재천 해비치 호텔앤드리조트 총주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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