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약삐약 병아리, 음메음메 송아지…푸~푸~ 개구리, 푸르르르~ 물풀.” 아이들의 재잘거림과 함께 전기오리차가 천천히 화원동산을 오른다. 길은 작은 동물원과 야생화 단지를 지나 얕은 언덕으로 구불구불 연결 되고, 양편으로는 아름드리 나무가 짙은 그늘을 드리운다. 대구 달성에선 ‘화원’도 ‘동산’도 일반명사가 아니라 고유명사다.
지금은 유원지로 이미지가 굳어졌지만, 화원동산은 삼한시대에 신라와 가야, 백제의 세력이 맞선 최전선이었다. 대규모 고분군과 화원토성(土城)이 있던 자리였지만, 일제강점기인 1928년 유원지를 조성하면서 훼손돼 지금은 눈여겨보지 않으면 알 수 없을 만큼 흔적만 남았다. 대구 도심의 달성토성이 달성공원으로 둔갑한 과정과 비슷하다.
낙동강 바로 위의 언덕에 위치한 화원동산은 전략적 요충지이면서 경치도 빼어난 곳이다. 신라 35대 경덕왕이 가야산에서 병으로 휴양 중인 세자를 문병하는 길에 9번이나 들렀을 정도다. 인근 구라리는 구래(九來)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높지 않은 산마루에서 왼편으로 시선을 돌리면 언덕 아래로 낙동강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신천을 품은 금호강과 도심 하천인 대명천, 진천천이 낙동강으로 흘러 드는 지점으로 대구의 모든 물줄기가 이곳에서 하나로 합쳐진다. 물길과 물길 사이에 형성된 거대한 초록 섬은 흡사 남아메리카 대륙을 연상시킨다. 바로 대구의 생태고리 역할을 하는 달성습지다. 내륙에선 흔치 않은, 더구나 대도시 인근에서는 볼 수 없는 규모여서 더욱 이채롭다. 언뜻 평평한 초지 같이 보이지만 버드나무 군락 사이로 늪지대도 형성돼 다양한 식생이 어우러져 있다. 달성습지는 4대강 사업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하기도 했지만, 대구시가 2007년 야생동물보호구역 및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해 다행히 파괴를 막을 수 있었다.
드넓은 모래톱이 사라져 천연기념물인 흑두루미와 도요새가 무리 지어 나는 장관은 볼 수 없게 됐지만, 최근에는 국내 최대 맹꽁이 번식지로 알려져 중요성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청개구리 무당개구리를 비롯한 양서류와 살모사 까치독사 같은 파충류, 노루 고라니 너구리 등 포유동물도 서식하고 있어 대구환경운동연합에서는 낙동강 생태축의 핵심지역, 대구의 허파, 세계적인 습지라는 용어로 중요성을 부여하고 있다. 달성습지 전망대 주변에 형성된 모감주나무 군락도 천연보호림으로 지정됐다.
화원동산 입구 강변엔 최근 예천의 삼강주막을 본 딴 사문진(沙門津) 주막촌이 문을 열었다. 이곳 낙동강은 지금은 하류의 달성보에 갇혀 호수처럼 변했지만 한때는 강수욕과 모래찜질을 즐길 만큼 백사장이 드넓게 펼쳐진 나루터였다. 내륙 운송의 중심 역할을 한 사문진 나루는 1900년 우리나라에 최초로 피아노를 들여온 곳으로도 유명하다. 달성군은 2012년부터 사문진 나루터에서 피아노 100대가 출연하는 대규모 콘서트를 열어오고 있다. 올해 공연은 10월 1~2일로 예정돼 있다.
▦벽화 정겨운 마비정마을과 토담 단아한 인흥마을
화원동산에서 약 8km 떨어진 화원읍 본리리 마비정마을은 최근 이색적인 벽화마을로 주목 받고 있다. 전국에 유행처럼 번진 수많은 벽화마을은 여러 긍정적인 효과에도 불구하고 주변과의 조화와 주제의 통일성에서 아쉬움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마비정마을의 벽화는 화원읍 출신 이재도 작가가 2012년 5월부터 3개월간 혼자서 그렸다. 황토색 위주의 토속적 향기 물씬 풍기는 그림으로 산골마을과의 연관성과 통일성을 유지했다.
이를 테면 찌르레기 지저귀는 마을입구로 들어서면 코흘리개 꼬마들이 담장너머로 고개를 내밀고, 장독대 모퉁이 돌면 이 빠진 개구쟁이가 길을 안내한다. 고무신에 오줌을 갈기는 바둑이 옆에서 구두를 물고 달아나는 강아지도 보이고, 문간 옆 외양간에선 심심한 누렁이 두 마리가 먹이다툼을 벌인다. 어쩌면 수 십 년 전만해도 그림이 그려진 바로 그 자리에 있었을 법한 정겨운 고향마을 풍경이다.
마비정마을은 지금은 더 이상 찻길이 없는 비슬산 끝자락이지만, 한때는 가창면 주민들이 화원 오일장을 보기 위해 1시간 이상 산길을 넘어와서 잠시 쉬어가는 곳이었다. 마을 중간쯤에 위치한 마비정 우물은 주민들의 식수였고, 길손이 목을 추기던 곳이었다. 마비정마을에는 하루 천리를 달리는 수말 비무와 그를 대신해 죽음을 택한 암말 백희의 슬픈 전설도 전해진다. 그래서 마비정은 우물(井)이기도 하고, 두 말의 넋을 기리는 정자(亭)이기도 하다. 연리목과 연리지로 붙어있는 느티나무와 돌배나무, 국내 최고령 옻나무, 대나무 터널 길 등 아기자기한 이야기 거리가 소담스런 골목과 잘 어우러져 오래된 동화 속을 걷는 듯하다.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빵떡과 두부 수제비 등 주민들이 평소 즐겨먹는 소소한 먹거리도 맛볼 수 있다.
마비정마을이 수수함으로 가득한 반면 인근 인흥마을은 엄격함과 절제미를 풍긴다. 단아한 토담과 고즈넉한 한옥이 조화를 이룬 인흥마을은 남평문씨(南平文氏) 세거지다. 원나라에서 붓두껍에 목화씨를 숨겨 온 것으로 유명한 문익점의 18대손 문경호씨가 19세기 중엽 이곳에 터를 잡았다. 마을에는 인흥사지 3층 석탑이 남아 있어 원래는 절터였음을 알리고 있다.
남평문씨 아홉 대소가와 2채의 재실, 문중 서고인 인수문고와 부속 건물을 포함해 12여 채의 기와집이 소나무 제방 옆으로 자리잡아 마을 전체에 기품이 넘친다. 근대 초기에 형성된 마을답게 애초부터 잘 계획된 마을의 면모도 눈에 띈다. 대개 전통마을은 좁은 골목으로 이어지기 마련이지만 인흥마을 안 길은 차량도 지날 만큼 넓고 반듯하다. 관람객들에겐 정원이 아담한 수봉정사와 문중 자제들의 교육공간인 광거당 등 2채의 건물을 개방하고 있다.
달성=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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