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사람들을 위한 박수부대가 되는 게 제 노후 소임이에요.”
노(老)교수는 비판에만 익숙하고 격려는 인색한 우리사회의 분위기를 꼬집으며 후세대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주는 어른으로 남고 싶다고 했다.
2011년 동양인 여성 최초로 독일에서 괴테 금메달을 받았던 전영애(65) 서울대 독어독문학과 교수가 2016년 1학기 ‘독일명작의 이해’수업을 마지막으로 정년 퇴임한다. 1996년부터 모교 강단에 선 지 20년 만이다.
독일명작의 이해는 교양과목임에도 서울대에서 매해 명강의로 꼽혔다. 전 교수의 수업에는 교재가 없다. 대신 한 학기 동안 토론과 감상문 등으로 수업을 직접 만든 학생들이 학기 말에 자신만의 책을 펴낸다. 전 교수는 15일 “마지막 수업이 있었던 13일에는 학생들 저마다 책을 소개하고 돌려 읽느라 오후 5시에 시작한 수업이 자정이 돼서야 끝났다”며 웃었다.
20년 간 수업을 들은 제자들이 모여 전 교수의 고별강연을 마련한 것도 이런 아쉬움 때문이다. 제자들은 이날 ‘독일명작의 이해 마지막 강의’로 명명된 자리를 만들었다. 5년 전 수업을 들었던 졸업생 신상윤(29)씨는 “문학을 기계적으로 이해하는 게 아니라 감상을 끄집어 내고 다른 사람과 의견을 나누는 남다른 수업 방식에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날 고별 강연도 전 교수가 자신이 쓴 책 이야기를 들려주는 ‘나의 책들, 나의 길들’이라는 공개강연과 수강생들이 직접 강의를 추억하는 자리로 꾸며졌다.
전 교수는 2009년 국내 최초로 번역한 ‘괴테 시 전집’을 비롯해 독일원서 60여권을 우리말로 옮겼다. 이런 공로로 130년 역사의 독일 바이마르 괴테학회로부터 괴테 금메달을 받은 그 해 서울대 교육자상도 수상했다. 그 만큼 제자들에 대한 애정도 각별하다. 수업을 들었던 제자들과 ‘오마토’ ‘시마토’ 모임을 수년 째 갖고 있다. 오월 마지막 토요일, 시월 마지막 토요일에 제자들과 어울려 시를 읽고 대화를 나누며 밤을 지샌다.
2014년 10월 경기 여주시에 연 ‘여백서원’은 아예 제자들과 책을 위한 공간이다. 전 교수는 “5분 거리에 있는 집보다 앞으로 서원지기로서 서원에서 더 자주 지낼 것 같다”며 “독일과 한국을 오가며 연구를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당장 올해 ‘파우스트’ 원전을 새로 번역해 출간할 계획이다. 교단을 떠난 전영애 교수가 여생을 보낼 여백서원에는 그의 삶을 요약한 문구가 적혀있다. ‘맑은 사람(여백)을 위하여, 후학을 위하여, 시를 위하여.’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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