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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혼여족 說풀기 – 앙코르와트(3)

입력
2016.06.15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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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잃은 것보다도 다른 일행들에게 민폐를 끼치고 있다는 사실이 더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같은 업계 사람들은 서로를 아는 법. 지나가던 가이드를 붙잡고 우리 사정을 알려주자, 곧 우리 가이드에게 연락을 해주었다. 사실 데이투어를 통해 기억나는 것은 이 정도가 다이다. 일행들과 못하는 영어로나마 사이좋게 어울렸고, 가이드의 설명도 열심히 들었다(알아듣기는 힘들다). 그러나 땡볕 아래 관광하랴, 대화하랴, 사람들 놓치지 않게 속도 맞추랴 정신없이 걷고 나니, 그 다음부터는 데이투어를 하고픈 마음이 들지 않았다. 혼자서 느낌을 소여물 씹듯 곱씹고 싶었다.

그래서 무언가를 함께하자던 모두의 제안을 다 거절했다. 몇몇이(주로 남성임) 그날 저녁을 함께하자고 했고, 다음 날도 같이 다니자고도 했다. 하지만 난 그날은 달빛 아래에서 홀로 수영 후 맥주 한잔으로 피곤을 풀고, 다음 날부터는 혼자 다니고 싶다고 했다(생각해보니 한국에서는 잘 누리지 못한 호사이다. 한국에서는 대체로 남성들이 날 피하던데).

다음 날은 바라던 대로 툭툭 운전자를 고용해서 혼자 돌아다녔다. 어제 한 번 봤을 뿐인데도, 다가오는 유적들이 덜 낯설다. 툭툭에서 내려 유적 입구에 섰다. 그래 이거였다. 비로소 입은 다물고, 오각(五覺)은 열 수 있게 되었다.

이곳은 너무도 찬란하고 또 동시에 너무도 퇴색하여 차라리 영화 세트장 같았다. 천년 전의 돌벽이 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듯 보이나. 그 돌벽을 몇백년 된 나무뿌리가 오랏줄처럼 감싼 채 디딤돌 삼아 저 높은 하늘을 향해 굵은 가지를 뻗고 있다. 저 높은 곳에 있는 가지마다 녹색 나뭇잎들이 마치 풍성한 단발머리가 바람에 흩날리듯 풍성하게 흔들리고 있다. 나는 지금 현재에 있는가 과거에 있는가. 관광객의 웃음소리에 정신이 든다.

시기와 종교에 따른 양식을 내가 구별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알 수 있는 것은 자연에 대한 정직한 경배였다. 좁고 높은 천장은 하늘을 향한 경외감을 드러냈고, 가파른 계단은 하늘을 향해 올라갈수록 저절로 허리를 굽히게 만들었다. 동문은 정확히 해가 뜨는 쪽을 향해 있었고, 서문은 정확히 해가 지는 쪽을 향해 있었다. 유적 자체가 나침반이었고, 자연에 대한 순응이었다.

바람을 불 때마다 가던 길을 멈추어 눈을 감고 귀를 열었다. 속삭임이 들릴 것만 같았다. 이들이 몇백년 간 목격한 이 공간만의 비밀을 알려줄 것 같았다. 이들은 입이 무겁나 보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아니면 아직은 내가 낯설어서일까.

걸어도 걸어도 좋았다. 아무 데에나 주저앉아도 좋았다. 걷느냐 생긴 열기는 툭툭을 타고 앙코르와트에서 앙코르톰으로 이동하고 프레아칸으로 이동할 때 생기는 바람이 식혀주었다.

그렇게 이동하던 중에 신기한 공간을 발견했다. 쉬려고 찾아간 곳인데, 느닷없이 눈앞에 물이 펼쳐졌다. 물은 아주 맑아, 하늘에 떠 있는 구름까지 거울처럼 비추었다. 하지만 그 물은 또한 움직임 없이 고요하여 나뭇잎들이 담요처럼 물을 덮고 있었다. 물 너머 아무리 시야를 멀리 두어도 또 물이었다. 첨벙거리는 아이도, 노를 젓는 배도 없었다. 그저 물과 하늘과 바람과 나무뿐이었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있어 본 적 없는 그런 공간, 지금도 앙코르와트 유적하면 가장 먼저 생각이 난다. 다시 가도 그곳을 발견할 수 있을까.

이런 식으로 사흘을 돌아다녔다. 혼자 다니기에 무척 좋은 곳이었다. 낯설어 식상할 틈이 없고, 또한 고요해 맘껏 조용해질 수 있다. 그래서 난 마지막 날 오후까지도 유적지를 걷다가 밤 비행기를 탔다. 비행기는 내가 가진 미련 따위는 아랑곳없이 정시에 서울로 출발했다. 그렇게 또 하나의 혼자 하는 여행이 끝이 났다.

이쯤 해서 기억력이 비상한 독자는 물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앙코르와트 돌 틈에 대고 어떤 비밀을 뱉었냐고. 하하. 비밀!

임윤선 변호사

*필자 사정으로 기고를 중단합니다. 7월 7일부터 배철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가 새 필진으로 글을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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