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신격호 구습 완전히 청산 못했을 수도"
롯데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신격호 총괄회장 시절 주로 형성된 구습으로 인해 촉발됐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신동빈 회장의 '신(新) 롯데' 구상이 부친의 경영 잔재로 발목 잡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신동빈 회장은 지난해 경영권 분쟁을 계기로 기업공개(IPO), 순환출자 해소 등 개혁을 시도하고 있지만 가족의 지나친 경영 참여, 폐쇄적 지배 구조 등 신격호 총괄회장 시절의 잔재가 여전히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15일 롯데와 재계에 따르면 신격호 총괄회장은 일본에서 비누와 껌으로 일군 사업을 기반으로 한국의 제과·관광·유통·면세업 등을 세계적 반열에 올려놓은 뛰어난 경영자이지만 검찰 수사를 계기로 신격호 시대의 그늘이 드러나고 있다.
우선 가족의 지나친 경영 참여로 인한 일감 몰아주기 의혹이 대표적이다.
맏딸 신영자 롯데복지재단 이사장과 셋째 부인 서미경 씨 및 그의 딸 신유미 씨 모녀 등이 주주로 구성된 유원실업, 시네마통상, 시네마푸드 등은 롯데시네마의 매점 사업권을 확보·운영하는 과정에서 특혜 및 비자금 조성 의혹을 받고 있다.
2013년 기준으로 시네마통상은 신영자 이사장이 28.3% 지분을 보유한 최대주주였고 신 총괄회장의 친동생인 선호·경애씨(각 9.43%), 신 사장의 자녀 혜선(7.6%)씨와 선윤·정안(각 5.7%)씨 등 롯데가(家)가 지분 84%를 보유했다.
롯데시네마 매점 사업을 운영한 유원실업은 서미경 씨가 57.8%로 최대주주이고 신유미씨 등 나머지 혈족이 지분을 나눠 가졌다.
이런 방식으로 3개 업체가 수년간 올린 수익은 1,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2012∼2013년 국정감사 등에서 '일감 몰아주기' 등의 지적을 받자, 신동빈 회장은 신영자 이사장의 시네마통상, 서미경씨의 유원실업 등에 대한 매점 사업권을 회수했다.
현재 검찰은 당시 거래가 적법했는지, 이 과정에서 탈루가 없었는지, 또는 거래 과정에서 매출 누락 등을 통해 수익을 빼돌린 뒤 비자금을 조성했는지 살펴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폐쇄적 지배구조를 유지해 온 것도 신격호 총괄회장 시대의 특징 중 하나다.
공정거래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롯데의 내부지분율은 85.6%로 10대 그룹 중 가장 높다.
내부지분율은 전체 자본금 가운데 오너와 계열사, 친족, 임원 등의 보유 주식 가격이 차지하는 비중으로, 내부지분율이 높으면 외부의 적대적 인수합병(M&A) 방어에는 유리하지만 기업 지배권이 소수에 집중된 폐쇄적 구조가 될 수밖에 없다.
내부지분율이 이처럼 높지만 신격호 총괄회장 등 오너와 친족 지분은 2.4%에 불과하기 때문에 롯데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대기업 집단 가운데 가장 많은 67개의 순환출자 고리를 갖고 있다.
한국 롯데 86개 계열사 가운데 상장된 회사는 9.3%(8개)에 불과하고 일본 롯데 계열사는 상장사가 아예 없다.
신 총괄회장은 이처럼 기업공개를 꺼리는 경영방식을 고수해왔다. 실제로 신동빈 회장이 2006년 롯데쇼핑을 상장하기 위해 관련 보고를 했을 때도 신 총괄회장은 내켜 하지 않았다고 한다.
롯데 관계자는 "신 총괄회장이 한국 경제사에서 존경할만한 분인 건 사실이지만 보수적 경영스타일을 가졌던 것만큼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2011년 롯데그룹 회장에 취임하면서 자신의 시대를 본격적으로 열기 시작한 신동빈 회장은 지난해 경영권 분쟁을 계기로 롯데의 지배구조 등에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신 롯데' 구상을 추진해왔다.
대표적인 것이 한국 롯데의 지주회사 격인 호텔롯데의 상장이다.
신 회장은 애초 이달 말 호텔롯데를 상장할 계획이었으나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의 롯데면세점 입점 로비 연루 의혹으로 상장 일정을 한 차례 연기한 데 이어 검찰 수사가 본격화하면서 상장이 기약없이 연기된 상태다.
신 회장은 롯데그룹의 순환출자 고리와 관련해서는 "남아 있는 순환출자의 80% 이상을 해소하고 중장기적으로 그룹을 지주회사로 전환해 순환출자를 완전히 해소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가족의 지나친 경영 참여를 경계하는 것도 신 회장의 '신 롯데' 구상 중 하나다.
그는 지난해 12월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과의 인터뷰에서 "기업과 가족은 별개"라며 "기업의 문제는 주주 총회와 이사회에서 결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재계 관계자는 "신동빈 회장은 지배구조 개선 등 '신 롯데' 구상으로 부친의 경영스타일과 차별화된 행보를 보였지만, 아직 '신격호 시대'의 잔재를 완전히 청산하지 못한 상태가 아닌가 생각된다"고 말했다.
다른 재계 관계자는 "신동빈 회장이 회장직을 맡은 것은 2011년이지만 2004년부터 정책본부장(부회장)으로서 경영에 적극 참여했던 만큼 부친 신격호 총괄회장과 완전히 분리해 생각하는 것은 어렵지 않겠느냐"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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