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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더러운 ‘합법’ 행위의 종말

입력
2016.06.15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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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조에 요이치(舛添要一) 도쿄(東京)도 지사가 최근 한 달 내내 일본인들을 열 받게 했다. 하루에도 수십 차례나 “죄송하다”고 머리를 조아리면서도 “그만두겠다”는 말은 좀체 내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 언론들이 가혹할 정도로 연일 융단폭격을 때려대고 도쿄 도민의 99%가 물러나라고 쇳소리를 내는데도, 그는 15일 간신히 사임 의사를 밝힐 때까지 초지일관 “더 열심히 일하겠다”고 앙탈을 부렸다. 처음에는 “양심도 없는 놈” 심지어 “죽여버리겠다”며 마구 분노를 쏟아내던 일본인들도 어느덧 기가 막힌 듯 마스조에씨의 ‘불굴의 멘탈’에 감탄사를 연발할 정도였다.

마스조에 도쿄 도지사. 연합뉴스
마스조에 도쿄 도지사. 연합뉴스

그의 죄과는 가볍지 않다. 국민 세금인 정치자금으로 ‘크레용신짱’ 만화책이나 파자마, 팬츠 등을 산 것은 약과다. 집 근처에서 20만엔어치 피자를 사 먹었는가 하면, 취미인지 재테크인지 900만엔어치나 미술품을 사들였다. 회의 명목으로 호화롭게 가족여행을 갔는가 하면, 주말이면 어김없이 관용차로 다른 지방에 있는 별장을 오갔다. 2014년 2월 취임 이후 9차례 해외에 다녀오면서 쓴 돈도 2억엔, 우리 돈으로 20억원 상당이다. 경제규모에서 거의 한국 전체에 육박하는 거대도시의 수장이 한 짓이라고는 좀스럽기 짝이 없다. (관련기사 ▶ 마스조에 도쿄도지사 마침내 낙마)

이런 마스조에씨이지만, 온갖 비난과 사임 압력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자리보전을 위해 발버둥 칠 버팀목은 있었다. 어디까지나 법을 어기진 않았기 때문이다. 정치인에게 정치활동은 코에 걸면 코걸이이고, 정치자금법은 이를 규제하기는커녕 거의 완벽하게 법적으로 보장해 준다. 마스조에씨의 취미인 그림 그리기나 피자 만들기도 충분히 합법적인 정치활동으로 포장될 수 있다. 그가 말한 대로 “결코 위법 행위는 없었다. 다만 도의적으로 죄송할” 뿐인 것이다. 이렇게 도저히 법적으로는 감당하지 못하게 되자 일본인들은 도의(道義)가 땅에 떨어졌다며 시절을 개탄했다.

다소 엉뚱하지만 이런 도쿄 도민의 땅을 치는 심정이 일본을 향한 한국인의 마음과 자못 닮았다. 한국은 일제의 식민지배가 원천적으로 불법 부당하므로 제대로 사과하라고 일본에 거듭 요구해왔다. 이에 대해 일본 측은 한국이 보기에는 다소 부당한 측면이 있을지 모르지만 식민지배가 결코 불법은 아니라고 핏대를 올린다. 식민지배가 합법적이었으므로 일본이 한국에 배상하거나 보상할 일도 없다는 것이다. 마스조에씨가 일본의 정치자금법에 기대어 합법 운운했듯이 일본 정부 또한 제국주의적 식민지배 사관에서 한 발도 물러서지 않았다. 위안부 문제를 포함한 대부분의 한일 간의 갈등의 근원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일본이 말하는 합법의 근거는 무엇인가. 황당하게도 제국주의가 횡행하던 시절의 국제법과 일제의 국내법이다. 일제 스스로가 ‘불법적으로’ 한국을 윽박질러 만든 법에 의거해 한반도를 식민지배했으므로 합법적이었다고 일본 정부는 지금도 말하는 것이다. 이런 일본 측의 눈으로 보면 한국은 영원히 일본이라는 모국에서 분리된 절름발이 나라 신세를 면할 수 없다. 정치인으로서 타락할 대로 타락한 마스조에씨가 정치인들이 스스로를 위해 만든 정치자금법에 숨어버리자 도의를 탓하며 탄식한 일본인들처럼 말이다.

정치가 법의 그늘에 숨는 순간 구차해지듯이 국제관계에서 법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도의다. 일본인들이 마스조에씨에게 사람이 마땅히 행해야 할 도덕상의 의리를 강하게 요구했듯이 일본 정부 또한 자가당착적인 법의 논리에만 숨지 말고 도의의 세계로 당당하게 나오길 바란다. 입으로만 사과한 뒤 뒤에선 딴죽을 걸고 툭하면 적반하장격으로 법을 내세운다고 도의적 책임에서 자유로워 질 순 없는 법이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다고 하늘이 사라지지 않듯이 말이다. 하기야 얄팍한 법의 논리를 앞세워 도의를 저버리고 숱한 사람들을 약 올리며 괴롭히는 정치는 일본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이동준 기타큐슈대 국제관계학과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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