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6월 15일
테오도르 제리코의 1821년 유화 ‘앱솜의 경마’는 경주마들의 박진감 있는 질주 장면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려 한 작품이다. 말은 앞다리와 뒷다리를 각각 전방과 후방으로 한껏 펼쳐 트랙 위를 나는 듯 달린다. 고구려 무용총 수렵도의 사슴 호랑이 말들이 뛰는 모습도 그와 다르지 않다.
말이 달리는 모습이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 처음 밝혀진 건 1878년 6월 15일, 영국 출신의 사진작가 에드위어드 머이브리지(Eadweard Muybridge, 1830~1904)의 사진을 통해서였다.
사실 구보중인 말의 정확한 발 동작을 두고 그 전서부터 말들이 많았던 듯하다. 인간의 시각이 질주하는 말의 네 다리의 위치와 동작을 정확하게 포착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고, 그래서 말(言)들도 엇갈렸을 것이다.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지낸 사업가 겸 경주마 농장주 리랜드 스탠포드(Leland Stanford)가 해답을 찾고자 1872년 저명한 사진작가 머이브리지를 고용했다. 그는 12대의 카메라를 나란히 배열해놓고 달리는 말을 찍기 시작했다. 걷는 동작서부터 가벼운 구보, 질주하는 동작까지 그는 숱하게 시도했고, 그림들을 통해 알고 있던 도식적인 말의 동작과는 사뭇 다른, 예컨대 공중에 떠 있는 네 다리가 말의 동체 한 가운데로 움츠려 있는 장면 등이 그의 사진을 통해 확인됐다. 상상하던 것과 사뭇 다른 낯선 포즈에 사진 조작을 의심한 이들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1878년 오늘, 머이브리지는 기자들을 팔로 알토의 스탠포드 농장에 초대, 구보하는 말을 즉석에서 촬영했다. 약 70cm 간격으로 배열된 24대의 카메라는 말의 다리에 연결된 트립 와이어(초보적 형태의 릴리스)로 셔터가 자동으로 작동되게 장치됐다고 한다. 말은 약 시속 58km로 질주했고, 셔터스피드로 환산하면 24컷의 촬영 속도는 약 1/2,000초였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게 최초의 연속사진으로 꼽히는 ‘달리는 샐리 가드너(Sallie Gardner at a Gallopㆍ샐리 가드너는 모델이 된 암말 이름)’다. 흑백의 사진들을 환등기로 빠르게 비춘 슬라이드 영상을 최초의 흑백 동영상이라고 치기도 한다.
곰브리치는 그의 ‘서양미술사’에서 머이브리지의 저 사진을 소개하며, 예술 작품을 감상할 때 가장 경계해야 할 것으로 습관과 편견을 들었다. 물론 미술 감상에만 필요한 충고는 아닐 것이다. 최윤필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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