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늦게 찾아와 면목이 없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
14일 홍삼 영양제 한 박스를 손에 들고 서울 중구 세종대로 한국일보 본사에 들어선 중국인 장썽차이(26)씨는 서툴지만 또박또박한 한국어 발음으로 이렇게 말했다. 생명의 은인을 21년 만에 마주한 순간이었다. 흐뭇한 미소로 훌쩍 자란 청년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뽀빠이’ 이상용(72)씨가 화답했다. “잘 살아줘서 고맙다. 찾아와줘서 고맙다.”
두 사람의 인연은 2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 하얼빈에 살던 장타이룽(49)씨는 선천성 심장판막증을 앓던 외아들 장썽차이(당시 5세)씨를 보며 발만 동동 굴렀다. 수술만 하면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지만 당시 4,000만원에 가까운 수술비는 가난한 농부였던 아버지의 손발을 꽁꽁 묶어 버렸다.
당시 한국에서 심장병어린이재단을 만들어 운영하던 이씨는 이들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지인의 소개로 찾아간 이씨의 도움으로 장썽차이씨는 경기 부천의 한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건강을 되찾았다.
중국에 돌아간 뒤에도 당시 이씨가 진행하던 MBC ‘우정의 무대’를 빼놓지 않고 챙겨봤다는 장타이룽씨는 “직접 찾아 뵙고 인사를 드리고 싶어 연락처를 수소문해도 알 길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수술 이듬해인 1996년 이씨가 심장병 재단 성금 유용이란 누명을 쓰고 ‘우정의 무대’ 등 모든 방송 프로그램에서 강제 하차한 이후 연락이 닿을 방법은 더더욱 없었단다.
2년 여 전 아버지와 함께 여의도에 있던 MBC 방송국을 무작정 찾아가 이씨를 찾기도 했다는 장썽차이씨는 “21년이 지나서야 나를 살려준 은인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며 “그 사이에 선생님에게 힘든 일이 생기신 것도 모르고 살았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는 “어릴 때 TV 속 이 선생님의 모습을 볼 때마다 온 가족이 ‘저 분이 우리를 살려준 분’이라고 말해준 덕분에 선생님을 잊은 적은 없다”고 말했다.
장썽차이씨는 목 바로 아래부터 배꼽까지 길게 남은 심장병 수술 자국을 이씨에게 보여주기도 했다. 평생 지워지지 않을 흉터이지만 이를 볼 때마다 이씨에 대한 감사함을 되새긴다고 했다. 그는 “격한 운동을 할 때 남들보다 숨이 더 쉽게 차는 것 말고는 아주 건강하다”며 쑥스럽게 웃었다.
이씨의 감회도 남다르다. 지난 34년 동안 자비를 털어 무려 567명의 심장병 어린이 환자를 도왔지만 건강을 되찾고 자신을 찾아온 사람은 장썽차이씨가 처음이다. 이씨는 “다들 어렵게 살던 사람들이고 수술 이후 나에게 미안한 마음이 커서 찾아오기 힘들었을 것”이라며 “기회가 되면 건강한 모습들을 꼭 보고 싶다”고 말했다.
조아름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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