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이 최근 원훈과 엠블럼을 교체했다. 새 원훈은 ‘소리 없는 헌신, 오직 대한민국 수호와 영광을 위하여’로 결정했다. 국정원은 “이 나라를 위협으로부터 지키고 위대한 대한민국의 무궁한 발전과 번영의 초석이 되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국정원의 원훈 교체는 이번이 세 번째다. 국정원의 전신으로 1961년 창설된 중앙정보부는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를 원훈으로 사용했다. 그 후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1년 국정원으로 이름이 바뀌면서 원훈도 ‘정보는 국력이다’로 개정됐다. 이어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8년에 ‘자유와 진리를 향한 무명의 헌신’으로 교체됐고, 7년여 만에 박근혜 정부에서 다시 개정된 것이다. 거의 정권이 바뀔 때마다 원훈도 달라진 셈이다.
국정원의 이미지 쇄신과 개혁 차원에서 추진하는 대외적 모토 변경을 뭐라 할 건 아니다. 대선개입 의혹과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민간인 해킹의혹 사건 등으로 실추된 이미지를 회복할 필요성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모토만 바꾼다고 실체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정권에 따라 원훈을 바꾸게 되면 최고 국가정보기관이 국가의 이익이 아니라 정권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오해를 살 여지마저 있다. 미국 CIA나 이스라엘의 모사드 등 세계 최강의 정보기관이 정권이 교체됐다고 모토를 바꿨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중요한 것은 정권 교체와 상관없이 국익 수호의 최후 보루로서 국민적 신뢰를 얻느냐에 있다.
그런 점에서 국정원이 원훈 교체와 함께 국정원 권한 강화와 관련한 논문을 현상 공모하는 것도 시대착오적이다. 국가보안법과 디지털자료 증거 능력, 감청제도 등 국정원 권한과 밀접한 법과 제도 정비를 목적으로 하는 ‘안보형사법 연구논문’을 수백 만원씩의 상금을 내걸고 공모를 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아이디어가 내부의 광범위한 의견 수렴을 거쳐 나왔다는 점에서 더욱 실망스럽다.
국정원이 정작 고민해야 할 것은 신뢰 회복이다. 국정원은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끊임없이 정치적 논란에 휩싸였고 이로 인해 국민 불신을 받아왔다. 그런데도 국민 신뢰를 얻기 위한 내부적 개혁작업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명실상부한 정보기관으로 거듭나기 위해 구성원들이 얼마나 노력을 해왔는지 의문이다. 국정원 개혁은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국정과제이고, 개혁의 핵심은 정치적 독립이다. 새로 출범한 20대 국회는 국정원이 어느 정권에도 휘둘리지 않고 묵묵히 일할 수 있도록 제도적, 법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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