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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호랑이와 재벌

입력
2016.06.1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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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TV ‘다큐프라임’ 신년특집 5부작 <생존의 비밀> 1부 ‘은밀한 사냥꾼, 호랑이’에는 영역 다툼으로 서로 점점 멀어져 가는 벵골 호랑이 가족 이야기가 나온다. 어릴 때는 엄마 호랑이의 보호를 받으며 함께 뛰놀던 새끼 호랑이들이 성장하면서 서로 물어뜯는 치열한 영역 다툼을 벌이다가 결국 힘이 약한 놈이 길을 떠난다. 심지어 엄마나 아빠 호랑이마저 공격해 자신의 영역에서 몰아낸다. 초원에서 가족이 무리를 지어 사냥하며 공생하는 사자와는 달리, 호랑이는 밀림에서 홀로 은밀히 사냥을 하는 쪽으로 진화했다.

▦ 재벌가의 재산 다툼을 보면 부모도 형제도 없는 호랑이 세계의 생존방식과 유사하다. 롯데그룹이 대표적이다. 형제 간인 신동빈 회장과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이 아버지 신격호 총괄회장의 재산 상속을 둘러싸고 치열한 공방을 벌이고 있다. 경쟁에서 밀려난 형이 동생을 공격하다 끝내 검찰에 비리 자료를 넘겼다. 또 고령의 아버지를 동원해 총회를 소집하거나, 아버지를 정신감정 대상으로 전락시켰다. 형제간 우애라고는 털끝만큼도 없고,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는 사생결단의 치열함이 섬뜩하다.

▦ 롯데그룹뿐만 아니다. ‘형제의 난’으로 유명세를 떨쳤던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도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건강이 악화했을 때 상속을 둘러싸고 난(亂)을 일으켰다. 끝내 현대그룹은 현대차그룹과 정몽준의 현대중공업그룹 등으로 쪼개졌고, 정주영 전 회장이 유명을 달리하면서 혈투가 끝났다. 효성그룹의 조현준 사장도 동생인 조현문 전 부사장에게 횡령ㆍ배임 혐의로 고발당해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이들 외에도 수많은 재벌가가 고소ㆍ고발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

▦ 상속 관행이 문제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가 확실치 않은 데다, 자식에게 기업이나 재산을 물려주는 풍토 때문이다. 무능한 재벌 2ㆍ3세들은 갑질에나 익숙할 뿐, 기업가정신 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 해외로 눈을 돌리면 재벌이 본받아야 할 사례가 적지 않다.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 부부는 보유주식의 99%를 기부하기로 약속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도 보유주식 대부분을 사회에 환원하고 있다. 우리 재벌에 이 같은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조재우 논설위원 josus6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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