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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뉴스] 통계청장의 품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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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뉴스] 통계청장의 품격

입력
2016.06.14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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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경준 통계청장. 연합뉴스
유경준 통계청장. 연합뉴스

14일 민간경제연구소인 현대경제연구소가 발표한 ‘청년 고용보조지표의 현황과 개선방안’ 보고서가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보고서는 현재 통계청이 실업자로 분류하지 않는 ‘비자발적으로 비정규직에 종사하고 있는 청년’과 ‘그냥 쉬고 있는 청년’을 사실상 실업자로 분류해 국내 청년 체감실업률이 34.2%(2015년 8월 기준)에 달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연구자가 이 두 가지 조건을 실업자로 분류한 건, 우선 “임금, 공적연금, 고용보험, 교육훈련 등 근로여건이 자발적 정규직에 턱없이 열악한 비자발적 비정규직에 종사하고 있는 청년은 사실상 실업상태에 놓여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냥 쉬고 있는 청년의 경우도, 이들을 지표에 잡지 않고 그냥 두면 “당사자가 빈곤층으로 추락할 뿐만 아니라 복지비용 등 사회경제적 손실이 커질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이들을 노동시장으로 견인해야 한다는 점에서 실업자로 분류했다고 했습니다. 사실 열악한 조건에서 일 할 수밖에 없는 청년 입장에선, 정부가 정의한 실업자(지난 4주간 일자리를 찾아 적극적으로 구직활동을 하였던 사람으로서 즉시 취업이 가능한 사람)보다 이 분류가 더 현실에 맞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제 보고서와 같은 시점인 작년 8월 통계청이 제시한 청년 공식실업률이 8.0%였던데 반해, 통계청이 함께 발표하는 고용보조지표3(공식 청년실업자+시간관련 추가취업 가능자+잠재경제활동인구)을 통해 분석한 청년 체감실업률은 22.6%였습니다. 보고서는 결론을 통해 “정부 차원에서 청년고용의 특수성을 고려한 추가적인 고용보조지표를 개발하고, 체감실업자의 특성에 맞춰 청년고용정책을 구체화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그런데 이 보고서 때문에 결국 사달이 났습니다. 이날 오후 3시쯤 유경준 통계청장이 갑자기 기획재정부 기자실을 찾아왔습니다. 해당 보고서의 통계 해석이 잘못돼 직접 해명해야겠다는 거였습니다. 민간연구소 보고서에 대해 정부가 서면이 아닌 브리핑을 통해 해명하는 건 상당히 드문 일입니다. 그것도 청장이 직접 나서는 경우는 더욱 이례적입니다.

유 청장은 “통계청의 통계가 현실감 없다는 얘기가 10여년 전부터 꾸준히 나왔고, 그래서 내가 취임 이후 꾸준히 개선하고 있다”라며 “고용지표도 우리 현실에 맞는 지표를 내기 위해 국제노동기구(ILO) 기준 외에도 고용보조지표 1,2,3을 별도로 작성하고 있는데, 현대경제연구원의 분석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도 없고 국제적으로도 우스운 기준”이라고 반박했습니다. 그는 이어 “내가 이 분야에 대해 30년 이상 연구한 사람”이라며 ‘비자발적 비정규직’과 ‘그냥 쉬고 있는 청년’을 왜 고용지표에 반영할 수 없는지 등에 대해 조목조목 설명했습니다.

통계청도 민간연구소의 주장에 언제든 나름의 입장을 밝힐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해명 과정에서 유 청장의 발언은 너무 나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유 청장은 보고서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현대경제연구원은 현대그룹에서 하는 연구소인데, 최근 통계 해석이나 수치를 자극적으로 낸다”, “언론에서 (보고서를) 많이 다뤄주다 보니 너무 자극적으로, 기준에 맞지 않는 자료를 낸다고 생각한다”, “연구소 차원에서 시간적으로 쫓기고 실적을 중시해 보고서를 빨리, 많이 생산하고 언론에 보도하다 보면 자극적으로 할 수도 있지만 이건 경계를 넘어섰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보고서가 더러 기본적인 기준을 넘은 것에서 더 나아가 왜곡에 가깝다”고까지 했습니다.

해명하는 방식도 좀 지나친 부분이 없지 않았습니다. 현대경제연구원의 이날 자료뿐만 아니라 지난해 10월, 올해 4월 자료까지 거론하며 그간 이 연구소의 연구 결과를 싸잡아 비판했습니다. 그는 또 “물가, 고용, 가계동향이 통계청이 발표하는 3대 동향”이라며 “물가는 지난번에 해명했고, 고용은 오늘 했고, 추후 나오는 가계동향에 대해서도 이런 보고서가 나오면 올해 연말에 또 올 것”이라고까지 말했습니다. 듣기에 따라선 앞으로 조심하라는 얘기로 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유 청장이 지적한 문제의식은 충분히 곱씹을 부분이 분명히 있습니다. 일부 민간 연구소가 주목을 끌기 위해서 다소 자극적이거나, 어느 한 쪽의 입맛에만 맞추거나, 제대로 숙성되지 않은 연구 결과를 내 놓는 경우도 간혹 있는 게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학자 출신으로 유 청장이 이런 점을 묵과하기 어려웠을 거란 충정 또한 이해는 되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민간연구소는 정부 산하연구기관과는 달리 다양한 방식으로 자료를 가공하고 해석해 이를 바탕으로 정부기관이 생각지 못했던 부분을 지적하는 기능도 합니다. 그런데 이날 유 청장의 반응은 ‘관련 분야를 30년 이상 연구한 연구원’으로서 이런 민간연구소의 존재 의의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비칠 수도 있었습니다. 국가 통계를 책임지는 기관장의 품격에도 어울리지 않아 보입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사실 정부가 임시공휴일 지정 효과(올해 5월6일 기준 1조3,000억원)를 홍보할 때마다 근거를 인용하는 출처 기관이기도 합니다. 같은 기관의 보고서라도 달면 삼키고, 쓰면 역정을 내는 태도는 좀 자제해야 하지 않을까요?

세종=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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