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마을 여교사 성폭행 사건에 대해 전남 신안군 사회단체 관계자들이 대국민 사과를 했다. 우선, 이 글은 성폭행 사건 피의자들이 유죄로 밝혀질 경우, 그들에 대해 엄정한 법의 집행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전제한다. 필자는 이들의 죄질이 매우 불량하며, 법이 허락하는 최고형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이 사건을 두고 신안군 전체를 대표한다는 사람들이 나와서 단체로 죄송하다는 말을 하는 것은 좀 후지다. 엊그제 미국 최대의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이전까지 가장 끔찍한 총기 사건은 2007년 4월 16일, 버지니아 공대에서 있었다. 33명이 죽고 29명이 부상을 당한 이 사건의 범인은 재미 한국인 조승희였다. 이때 대한민국은 패닉에 빠졌다. “미국 관광객이 줄면 어떻게 하나, 미국 무역 적자가 늘어나면 어떻게 하나, 미국 사람들이 우릴 미워하면 어떻게 하나” 불안해하던 한국인은 집단 자책감에 시달리다 못해 죄다 미국 방향으로 무릎 꿇고 사과하자는 결의를 했다. 미국 지도층은 “한국과는 무관한 일”이라며 어리둥절해 했다. LA타임스는 “참사 직후 재미 한인들이 촛불 예배를 여는 등 과민 반응을 보인 것은 오히려 혼란을 야기했으며 어떤 면에서는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극단적 집단주의’라는 비판도 있었다. 쉽게 말해서 우리의 사고방식은 후졌었다.
우리나라 자치단체 중 살인 강도 강간 절도 폭력 등 5대 강력범죄 발생률이 가장 높은 곳은 대구 중구, 서울 중구, 부산 중구 순이다(2012년 기준, 경찰청 통계). 세 곳의 주민대표들이 지금까지 이에 대해 사과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인구 840만의 뉴욕에서 2013년 한 해 동안 1,378건의 강간이 발생했다. 인구 1,030만의 서울에서 같은 기간 동안 6,430건의 강간 사건이 있었다. (서울이 더 안전할 것 같은 생각은 착각이다.) “우리가 잘못 했제”하는 방식이라면 서울 시장이나 뉴욕 시장은 맨날 사과해야 한다. “우리가 남이가”하는 편견이 유효하다면 서울이나 뉴욕에 가선 안 된다.
한 마디로 섬마을 여교사 사건은 인두겁을 쓴 세 사람의 개인이 저지른 범죄다. 흑산도와 무관하며 신안군과도 무관하다. 나아가 전라도와는 더더욱 무관하다. ‘섬에는 가지 말자, 역시 전라도, 음흉한 홍어…’운운하는 자들은 ‘도시에는 가지 말자, 역시 경상도, 깝치는 문딩이…’운운하는 자들만큼 후지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 자본주의는 개별성을 전제로 존재한다. 자본 앞에서는 1억원을 가진 오동진과 땡전 한 푼 없는 박말자만 있을 뿐 누구의 남편 혹은 친인척, 어떤 집단이나 민족에 속해 있느냐는 무시된다. 당장 5,000만 원을 들고 백화점에 갔을 때 당신이 흑인이든 백인이든 자본은 똑같은 한정판 샤넬 와니 백을 내어 준다(쿠폰 별도). 다만 나약한 인간은 희생양을 원하기에 악인이 속해 있는 집단이나 지역을 증오하곤 한다. 이 관습은 우리뿐 아니라 세계의 후진 여러 나라에 존속한다.
‘서경(書經)’에 벌불급사(罰弗及嗣)란 말이 있다. “벌은 그 가족에게 미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고대 중국 순 임금은 9년 동안 치수를 하지 못해 많은 백성들을 죽게 한 곤이란 사람을 처형했다. 그 후임에는 곤의 아들 우를 임명했다. 순 임금은 죄를 지은 사람은 곤 개인일 뿐, 아들인 우와는 무관하다고 여겼다. 유신시대 때도 있었던 연좌제를 기원전 2,200년 전 중국 고대인들은 부인하고 있다. 자본주의를 몰랐던 전설 기록자들조차 개별적 인간이 가진 존엄성은 알고 있었다. 21세기를 사는 집단주의자들은 짐작도 못 한다. 왜 그들이 누군가를 쉽게 대표해서는 안 되는지, 왜 한 지역을 하나의 색깔로 묶어선 안 되는지, 이런 행위가 후지다고 욕먹는지를.
명로진 인디라이터 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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