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독자들에게 나날이 외면당하는 것과는 달리 그들을 시가 있는 현장으로 끌어들이는 시 낭송회는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시 낭송회에 나오라는 제의가 있을 때마다 수락했다면, 어쩌면 나는 지금보다는 대중에게 알려진 시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처음 내게 시 낭송회에 나와 달라고 했던 사람은 잠깐 같이 일했던 선배 시인이었다. 건축가 김수근의 대표작 중 하나인 ‘공간’에서 정기적으로 열리는 시 낭송회에 그가 나를 초대했던 것. 그때 내가 펄쩍 뛰다시피 하며 거절했던 것은, 그 같은 형식으로 시를 읽는 방법이 나에겐 퍽 어색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내겐 어쩔 수 없이 사람들 앞에서 시를 낭송해야만 하는 기회가 생겼고, 당연히 잘 낭송하지 못했다. 반면 자신의 시에 감정을 실어 시를 잘 낭송하는 시인들을 여럿 보았다. 나 혼자 읽을 때는 평범하던 그들의 시는 잘 발효시켜 막 구워낸 따끈따끈한 빵처럼 맛있게 느껴졌다. 뒤늦게 나도 그들처럼 시를 잘 낭송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딱딱하게 굳어버린 혀는 푸른 들판의 느낌도, 흐르는 강물의 느낌도, 정지된 것들을 흔들며 소멸하는 바람의 느낌도 담아내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혼자 키득대며 다시 자신을 합리화시켰다. 사람들 앞에서 시를 낭송하기 위해 오가는 시간과 에너지를 비축한 덕분에 푸석푸석하던 나의 내면이 이만큼이라도 단단해진 거라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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