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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판에 막힌 스크린도어 비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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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판에 막힌 스크린도어 비상문

입력
2016.06.1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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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이 정위치에 안 설 경우

단단한 광고판이 탈출 가로막아

역사당 年 100억원 광고 수익

“돈벌이 위해 안전 뒷전으로 밀려”

지하철 1호선 서울역 승강장에 설치된 스크린도어 광고판이 비상시 탈출을 돕는 안전보호벽을 가로 막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지하철 1호선 서울역 승강장에 설치된 스크린도어 광고판이 비상시 탈출을 돕는 안전보호벽을 가로 막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얼마 전 서울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출근하던 박용규(35)씨는 갑작스런 열차 고장에 영등포역에서 내려야 했다. 하지만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스크린도어 사이마다 설치한 비상문이 있어야 할 공간은 광고판이 가로 막고 있어 하차가 불가능했다. 그는 결국 광고판이 없는 옆 승강장으로 이동해 비상문에 달린 빨간색 손잡이(push-bar)를 밀고 빠져 나올 수 있었다. 박씨는 “다행히 단순 기계 고장이어서 옆 문으로 옮길 여유가 있었지만 화재처럼 촌각을 다투는 위급상황이 발생했으면 어땠을지 지금도 아찔하다”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최근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건을 계기로 지하철 안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비상시 탈출용으로 설계된 스크린도어 안전보호벽(비상문)이 제 기능을 못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스크린도어 운영 주체인 서울메트로ㆍ서울도시철도공사가 수익사업을 위해 비상문 위치에 광고판을 대거 설치한 탓에 안전은 오히려 뒷전으로 밀려난 형국이다.

13일 서울역 등 유동인구가 많은 서울 주요 지하철역의 스크린도어를 살펴본 결과 상ㆍ하행 40개(전동차 10량 기준)의 안전보호벽 중 절반이 광고판으로 뒤덮여 있었다. 원래 비상 상황이 발생하면 보호벽 안쪽에 달려 있는 빨간색 손잡이로 벽을 열고 나올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광고판이 부착된 보호벽에는 광고물이 볼트로 단단하게 고정돼 있는데다 형광등과 전선까지 복잡하게 얽혀 있어 탈출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보호벽 안쪽에 마련된 망치로도 10㎝ 두께의 광고판을 깨뜨리기는 어려워 보였다. 열차에서 사고가 나 갑자기 멈출 경우 광고판 앞에 서 있던 승객들은 광고판이 없는 다른 출구를 찾아 빠져 나와야 하는 현실이다.

정비업체 직원이 스크린도어 수리 도중 사망한 구의역과 강남역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강남역에서 만난 장모(24)씨는 “대전지하철은 광고판이 스티커 형태로 보호벽에 붙어 있어 쉽게 찢어지는 반면, 서울은 단단한 유리벽이 아예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며 “서울메트로가 시민 안전을 볼모로 장삿속만 차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간 안전보호벽을 가로 막은 광고판의 위험성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국토교통부는 2010년 ‘차량이 정위치에 정차하지 못한 상태에서 사고 발생에 대비해 모든 문이 비상 개폐되도록 해야 한다’는 지침을 내렸고, 국민권익위원회도 지난해 4월 개선을 권고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문제점을 인정하고 “빠른 시간 안에 교체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시정 조치는 지지부진하기만 하다. 지난 1년간 광고판 철거 후 개폐식 비상문을 설치한 서울 지하철역은 3호선 독립문역과 홍제역, 5호선 양평역 등 3곳에 불과했다. 현재 스크린도어가 설치된 서울 1~8호선 278개 지하철역 가운데 광고판을 운영하는 역사가 262곳(94.2%)에 달하는 점을 감안할 때 교체율은 극히 미미한 셈이다.

지하철 운영 당국이 광고판 철거에 미온적인 것은 사업 수익이 그만큼 막대하기 때문이다. 광고판 한 개 당 월 평균 임대료는 250만원 정도, 강남역처럼 목 좋은 곳의 임대 수익은 400만원을 훌쩍 넘는다. 서울메트로 전체 역사로 환산하면 연간 100억원의 수입을 올릴 수 있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돈벌이 수단인 셈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관련 기관들은 예산 문제를 들먹이며 광고판 교체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서울메트로 측은 “광고판을 없애려면 역사 당 2억원 가량의 비용이 소요돼 재원을 먼저 마련해야 한다”고 답했다. 서울도시철도공사 관계자도 “비상문 설치를 전적으로 찬성하지만 적지 않은 광고 손실액을 보전할 수 있는 대체 수입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기복 시민교통안전협회 대표는 "스크린도어 설치 초기부터 비용 문제를 해결하려 외부 자본을 끌어 들이다 보니 시민 안전은 외면 받을 수밖에 없었다”며 "비상문을 비롯해 지하철 현장의 안전 이슈를 총체적으로 점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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