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후 2시 30분 서울중앙지법 425호 법정. 100억원의 부당 수임료를 챙긴 혐의로 구속 기소된 부장판사 출신 최유정(46ㆍ사법연수원 27기) 변호사가 연녹색 반소매 수의를 입고 법정에 들어서며 부패 전담 재판부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다소 헝클어진 갈색 단발머리의 수척한 모습으로 법정에 선 그는 자신의 혐의에 대해 어떤 주장도 펴지 않았다.
형사합의32부(부장 현용선) 심리로 열린 이날 재판은 최 변호사의 첫 공판준비기일이었다. 2014년 3월 개업 전까지 판사석에 앉았던 최 변호사는 방청석을 한번 곁눈질하지 않고 곧장 피고인석으로 향했다. 재판장이 “법정 진술은 유죄증거로 쓰일 수 있다. 다 이해하시죠?”라고 하자 그는 작은 목소리로 “네”라고 답했다. 직업을 묻자 “변호사입니다”라고 했다.
최 변호사는 이날 법정에서 판ㆍ검사 등에 대한 교제ㆍ청탁 알선 명목으로 상상하기도 힘든 거액을 챙긴 자신의 혐의(변호사법 110조 1호ㆍ111조 1항)에 대해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 그의 대리인은 “기록검토를 하고 있어서 다음 기일에 혐의 인정 여부를 밝히겠다”고 했다. 최 변호사는 “공소사실이나 증거신청에 대해 할 얘기가 있냐”는 재판장의 물음에 “변호인하고 검토해보겠다”고 짧게 답했다. 여론의 주목이 부담된다는 이유 등으로 구속 전 피의자심문도 포기했던 그는 출석의무가 없는 공판준비기일에 나왔지만 자신의 혐의에 대한 주장을 펴지 않았다.
검찰은 최 변호사에게 각각 50억원의 수임료를 준 정운호(51ㆍ수감 중)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와 송창수(40ㆍ수감 중) 이숨투자자문 대표 등의 진술, 이들 형사사건의 경과 관련 증거들, 최 변호사 등의 통화내역 등 총 330개의 증거를 신청했다. 검찰은 “최 변호사가 정씨와 송씨로부터 수임료를 받을 당시 (재판부 등과의) 교제 명목과 청탁ㆍ알선 명목 모두를 언급했다고 보고 있다”고 밝혔다.
최 변호사는 정 대표의 상습도박 2심 사건에서 “재판부에 얘기해 보석이나 집행유예로 빼내 주겠다”고 약속하고 50억원을 받았다가 불발되자 30억원을 돌려주고 사임했다. 이 과정에서 둘의 관계가 틀어지며 정운호 법조비리 의혹이 일파만파 번졌다. 그는 또 ‘인베스트 사기’사건으로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 받은 송씨의 2심을 맡으며 50억원을 받고 집행유예를 받아냈다. 1,400억원대 이숨투자 사기 사건 피해자들을 대리하는 김정철 변호사는 최 변호사의 수임료를 국고로 귀속하는 몰수가 아니라 피해구제에 쓰여야 한다는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할 예정이다. 법원은 최 변호사의 부당 수임료 70억원이 임의 처분되지 않게 해달라는 검찰의 추징보전 청구를 지난달 31일 인용했다.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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