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쓸쓸히 세상을 등진 역도스타 고 김병찬(당시 46세)씨가 생전에 목에 걸었던 메달 등 유품이 하마터면 고물상에 처분될 위기해 처했던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안타까운 사연은 이랬다. 지난 달 27일 오후 강원도 체육회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지난해 6월 쓸쓸히 세상을 떠난 김씨가 받았던 메달과 상장 등 유품이 고물상으로 넘어갈 위기에 놓였다”는 다급한 내용이었다. 전화를 건 사람은 김씨가 홀로 세상을 떠나기 전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던 이웃주민 김모(60)씨의 아들. 그는 “베이징 아시안게임 금메달과 상장, 한국체대 졸업앨범, 신문 스크랩에 먼지가 쌓인 채 방치돼 있었다”며 “한 때 세계를 들어올렸던 국가대표 선수를 기억할 유품이 고철 속으로 사라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전화를 했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당시 아파트 관리사무소는 김씨가 숨진 뒤 1년이 지나도록 상속자가 나타나지 않자, 유품을 폐기물 수거업체에 넘길 계획이었다. 스포츠계가 소중히 간직해야 할 국가대표의 모든 것이 흔적 없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던 셈이다.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들은 강원도 체육회가 김씨의 유품을 수거하면서 피땀이 녹아있는 메달이 고물상에서 빛을 잃을 뻔한 상황은 가까스로 면했다. 체육회는 친척이 있으면 전달한다는 방침이지만 불가능하면 7월 완공하는 체육회관에 전시하는 방법도 고려 중이다.
최중훈 강원도 체육회 사무처장은 “전화를 받은 뒤 곧장 후평동 아파트로 달려가 관리소에 사정을 얘기하고 김 선수의 유품을 가져왔다”며 “강원도역도연맹과 함께 보관이나 전시 방법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병찬은 한국체대 1학년이던 1990년 북경 아시안게임 90㎏급 금메달, 이듬해인 1991년 독일 도나우에싱겐 세계선수권에서 용상 은메달, 합계 동메달을 따면서 역도스타 반열에 올랐다. 역도계는 타고난 힘에 도전적인 성격을 지닌 젊은 역사(力士)의 등장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한국 역도의 중량급 간판이었던 김씨의 인생은 1996년 한 순간에 꺾이고 말았다. 불의의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그는 변변한 수입 없이 매월 52만5,000원의 연금과 10만원 안팎의 의료급여에 의지해 근근이 생계를 이어 갔다.
더구나 포창마차를 하며 하반신을 쓰지 못하는 아들을 부양했던 어머니마저 지난 2013년 세상을 떠나자 김씨는 세상에 홀로 남겨졌다. 대중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진 그는 지난해 6월 26일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 연금이 보건복지부의 최저생계비 지급 기준(49만9,288원)보다 많아 최저생계비 지원조차 받지 못했다는 메달리스트의 사정이 전해지면서 체육인들에 대한 복지가 화두에 오르기도 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올해부터 ‘제2의 김병찬’이 더 이상 나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 ‘경기력 향상 연구연금 수급자 생활보조비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김씨처럼 체육연금을 받고 있더라도 생활고, 장애 등으로 생계유지가 어려운 체육연금 수급자의 안정된 생활을 지원하는 제도다.
춘천=박은성 기자 esp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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