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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오해영, 또 때리니?… 사랑이란 가면 쓴 ‘드라마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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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오해영, 또 때리니?… 사랑이란 가면 쓴 ‘드라마 폭력’

입력
2016.06.13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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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자아의 오해영이 있다. 하나는 남자친구를 위해 새벽부터 도시락을 준비하고 먼저 "좋아한다"고 말할 줄 아는 사랑스러운 매력을 갖췄다. 내면의 또 다른 오해영은 좀 다르다. 화가 나면 지하철에서 가방을 집어 던지고 다른 여자의 머리채를 잡는다. 난폭한 오해영은 연애를 할 때도 거칠다. 썸남(something+男. 사귀기 전 단계에 있는 남자)을 때리는 건 기본, 사람이 있는 걸 보고도 창문에 돌을 던진다.

불편한 행동이 이어지지만, tvN '또 오해영' 시청자들은 오해영(서현진)이 여전히 사랑스럽다. 오해영의 폭력성이 남녀 사이의 애틋함을 드러내는 장치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오해영뿐만이 아니다. 남자주인공 박도경(에릭)도 종종 거친 언행을 보이지만, 극중 이를 문제 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커플의 난폭한 행동을 폭력으로 봐야 할까, 애교로 봐야 할까. 이 같은 상황이 실제라면 두 사람은 드라마와 같은 사랑을 이어갈 수 있을까. '또 오해영'의 데이트 폭력 장면과 이 같은 설정이 활용되는 이유를 진단해봤다.

1. '또 오해영' 속 데이트 폭력 5

● 맨손으로 차창 격파

박도경은 그냥 오해영(서현진)을 만나러 간 레스토랑에서 예쁜 오해영(전혜빈)과 마주쳤다. 파혼 당한 기억으로 예쁜 오해영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던 그는 그냥 오해영을 끌고 나와 억지로 차에 태웠다. 따라 나온 예쁜 오해영이 "보고 싶었어"라고 말하자 그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차창에 주먹을 내리꽂았다. 차 안에 앉아있던 그냥 오해영은 박도경의 돌발행동에 깜짝 놀라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이후 오해영은 박도경에게 "내 손목이 그 계집애 화나게 하는 데 갖다 쓰는 소모품이냐"며 화를 냈지만, 정작 차창을 깨 자신을 놀라게 한 부분에 대해서는 문제 삼지 않았다.

tvN '또 오해영' 5화에서 박도경(에릭)은 오해영(서현진)이 앉아있는 차의 창을 맨손으로 깨 오해영을 놀라게 했다. tvN 제공
tvN '또 오해영' 5화에서 박도경(에릭)은 오해영(서현진)이 앉아있는 차의 창을 맨손으로 깨 오해영을 놀라게 했다. tvN 제공

● 돌팔매질로 창문 파손

박도경에게 자신의 마음을 들킨 오해영은 동명이인의 예쁜 오해영(전혜빈)이 박도경을 찾아오자 자리를 비켜줬다. 예쁜 오해영은 "왜 하필 걔냐. 나랑 같은 이름이라 그런 거냐. 학교 다닐 때 그런 애들 많았다. 해영이 이름 타고 나에게 넘어오려는 남자들 많았다. 이거 해영에게 못할 짓"이라며 박도경을 나무랐다.

집 밖에서 두 사람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본 오해영은 돌을 던져 유리창을 깨트렸다. 박도경과 예쁜 오해영이 창문 앞에 서 있어 실제라면 누군가 다칠 수도 있었던 상황. 하지만 박도경은 깨진 유리창 조각을 조용히 치우며 상처 입은 오해영을 걱정할 뿐이었다.

● 썸남썸녀의 격렬한 몸싸움

지난달 30일 9회에서는 썸 타던 오해영과 박도경이 입을 맞추며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장면이 그려졌다. 두 사람의 로맨스가 촉발되는 명장면으로 남았지만, 이 상황도 어딘가 보기 불편하다.

오해영이 전 남자친구와 있는 모습을 보고 화가 난 박도경은 다음날 오해영과 마주치자 "너 참 쉽다. 정 떨어질 것 같다"고 모질게 굴었다. 오해영은 자리를 떠나려는 박도경에게 가방을 던지고 가슴팍을 치며 폭행을 가했다. 박도경 역시 지지 않고 맞서면서 두 사람은 격렬한 몸싸움을 이어갔다. 이내 서로 입을 맞췄지만, 크게 몸부림친 해영의 입술에는 생채기가 남았다.

● 손에 쥔 물건 내던지기

연애를 시작한 두 사람은 오해영이 박도경의 잘못으로 파혼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위기를 맞았다. 충격에 빠진 오해영은 진한 메이크업을 하고 거리로 나섰고 박도경은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기 위해 그의 앞에 나타났다. 오해영은 무릎 꿇고 빌라고 요구했지만, 박도경은 자존심 때문에 등을 돌리고 말았다. 오해영은 자리를 떠나는 박도경을 향해 핸드폰을 내던졌다. 다행히 박도경이 맞지는 않았지만, 머리에 맞았다면? 다음 장면의 장소는 병원이 됐을지도 모른다.

● 집주인 몰래 온 손님

옆집 이웃이기도 한 오해영과 박도경은 벽에 뚫린 문을 통해 서로의 집을 자주 왕래한다. 썸을 탈 때 이색적인 데이트 장소였던 오해영의 자취방은 이별 후 언제든 전 남자친구가 침입할 수 있는 위험한 공간으로 변한다.

12회에서 오해영은 귀가했다가 자신의 방에 앉아있는 박도경을 보게 됐다. 박도경은 "택배기사가 자꾸 벨을 눌러서 들어왔다"고 얘기했지만 실제라면 섬뜩하기까지 할 상황이다. 하지만 오해영은 "화가 나서 잠이 안 오다가 보고 싶어서 잠이 안 온다"며 절절한 마음을 드러낼 뿐이었다.

2. 여자주인공도 데이트 폭력의 가해자로

드라마에서 데이트 폭력을 미화하는 설정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0년 방영된 SBS '시크릿가든'은 김주원(현빈)이 길라임(하지원)의 거부를 무시하고 스킨십을 강행하는 장면 때문에 성폭행 미화 논란에 휘말렸다. 지난해 방영된 tvN '오 나의 귀신님'에서는 나봉선(박보영)이 강선우(조정석)에게 억지로 스킨십을 시도하거나 모텔로 유인하는 장면이 그려졌다. 귀신에 빙의된 나봉선의 애교 있는 성격을 부각시키는 장치였지만, 실제 상황에서 상대방이 원치 않았다면 성희롱에 해당한다.

완력으로 손목을 끌고 다니거나 강제로 안는 등 남자가 여자를 제압하는 장면은 인물의 남성미를 부각시키기 위해 관행적으로 활용되던 코드다. 최근에는 여자주인공의 주체적인 모습을 살리기 위해 역으로 여자가 거친 행동을 하는 장면도 그려진다. 데이트 폭력에 해당하지만, 물리적 힘이 약한 여자가 주체기 때문에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변신원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폭력예방교육부 교수는 "우리 사회는 남자가 주도적으로 의사 표현을 하고 여자가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름다운 로맨스로 포장되는 문화가 있다"며 "이런 관념이 드라마, 영화에 낭만적인 형태로 그려지는데 실제로 이것이 일반화되면 데이트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자극적인 장면을 대체할 만한 새로운 코드를 개발해야 하는데, 대부분의 제작자가 꾸준히 비슷한 코드를 활용하고 있다"며 "로맨틱한 설정을 살리기 위해 폭력성 미화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연출을 하면 대중에게 잘못된 가치관을 심어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육체적, 언어적 폭력뿐만 아니라 휴대전화를 확인해 상대방의 대인관계를 통제하거나 원하는 것을 들어주지 않고 방임하는 정서적 유형도 데이트 폭력에 해당하지만 이를 인식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변 교수는 "데이트 폭력으로 규정할 수 있는 상황들이 대중문화에서 계속 낭만적인 소재로 활용되면 전문가들이 올바른 인식에 대해 얘기해도 대중의 동의를 얻기가 힘들어진다"며 "폭력을 사랑이었다고 얘기하고 이를 문제 삼는 피해자를 비정상으로 보는 문화 분위기가 형성되기 때문에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로 볼 수 있다"고 전했다.

이소라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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