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도쿄(東京) 인근 나리타(成田) 공항 외에 제2 도시 오사카(大阪) 인근 바닷가에 간사이(關西) 공항을 관문으로 두고 있다. 오사카 시내에 있는 기존 공항이 교통량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주민들의 소음 민원이 쏟아지자 대체 공항을 마련한 것이다. 간사이 공항이 문을 연 지 20년 이상 지난 지금 애초 목표로 했던 아시아 허브공항 자리는 인천공항에 넘겨주고 말았다. 각각의 기능대로 운영될 예정이었던 오사카 국제공항과는 통폐합 문제로 골머리를 앓기도 했다. 게다가 이용객에 비해 공항 시설이 과대한 인근 고베(神戶) 공항은 여러 해 적자를 면치 못하는 등 일본에서 공항은 정부의 골칫거리다.
하지만 한국의 상황에 비하면 일본은 약과다. 정부 최대 지역개발 사업으로 언급되는 동남권 신공항 관련 갈등이 일파만파 확대되고 있다. 이웃 지역 부산(가덕도)과 경남(밀양)이 공항 유치를 위해 서로 자기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차기 대선 후보들까지 가세하면서 동남권 신공항 건설은 전국적 이슈로 확대되어 버렸다. 처음부터 정치적 개입을 우려했지만 대통령 선거와 지방 선거 등에서 공약사항으로 언급되면서 이미 정치적 사안으로 확대됐다. 국민은 여러 대목에서 정부와 정치권 그리고 지역 사회의 매끄럽지 못한 문제 해결 방식을 적나라하게 목격하고 있다. 우선 건설 타당성이다. 2009년 국토연구원의 용역 결과 밀양과 가덕도 모두 경제성 부족으로 결론이 났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국민의 혈세가 투입되는 토목 프로젝트에 해당 지역 이외의 국민이 쉽게 납득할 리 만무하다. 다음으로는 심각한 지역 이기주의다. 두 지역 모두 상생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가령 한 지역이 공항이 된다면 다른 한 지역은 항공 관련 산업의 배후지가 될 수 있는 일이다. 각 자치단체는 한 치라도 우리 땅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지역 이기주의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가장 안타까운 점은 이러한 사회적 갈등 현장에 ‘조정자’가 없다는 데 있다. 정치권뿐만 아니라 지역 사회도 자기 지역 유치 주장만 되뇔 뿐 공항을 건설할 경우 발생하는 경제적 부담, 공항 이용자들의 객관적 편의 문제 등은 애써 외면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권 그리고 해당 지역 국회의원들은 자기 지역 유치에만 골몰하고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협력적 그리고 상생적 해결을 위한 ‘조정자’ 역할에서 이미 손을 놓은 것처럼 비친다.
사회의 주요한 프로젝트마다 다소간의 갈등은 불가피한 일이지만 우리 사회의 갈등은 높아도 너무 높다. 때문에 치러야 하는 비용도 상상을 초월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사회갈등지수 국제 비교 및 경제성장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갈등 공화국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대상 25개국 중 갈등이 높은 순위로 5위였다. 치욕스런 성적표다. 삼성경제연구소(2010년 기준)가 밝힌 갈등 비용은 연간 최대 246조원에 이른다고 한다. 더 큰 문제는 갈등 조정 능력의 부재다. 많은 갈등이 발생하고 있지만 갈등 조정과 해결 능력이 2011년 기준 OECD 34개국 중 27위에 그쳤다. 갈등 유발은 사상 최고, 갈등 조정은 사상 최저 수준인 셈이다. 이념갈등, 세대갈등, 빈부갈등, 지역갈등, 여야갈등, 남북갈등 등 해결해야 할 숙제가 우리 앞에 산적해 있다. 갈등 유발을 선제적으로 예방하고 차단하는 역할이 물론 중요하겠지만 지도자라면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할 덕목이 갈등 조정과 해결 능력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임기 후반 50% 이상 지지율을 보여주는 데는 흑인 대통령이라는 핸디캡을 안고서도 다양한 사회적 갈등 해결에 노력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한 단계 더 도약하려면 갈등 조정 능력을 갖춘 대통령의 탄생은 필요충분조건이다. 적어도 다음 대통령은 특정 지역 출신이 아니라 ‘갈등 조정’ 능력을 갖춘 인물이라야만 한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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