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개 공장 밀집 ‘리버 루즈’
US스틸 등서 독성물질 내뿜어
주민 천식증상 비율 심각한 수준
흑인ㆍ유색인종 거주지 최대 피해
“생계 위해 있지만…” 깊은 한숨
주민 안전에 팔짱 낀 정부
플린트 납 수돗물도 1년간 방치
재정 수입에 혈안된 市ㆍ주정부
공해 배출 허용량 늘릴 움직임도
‘청정 공기법’ 규제 26년째 답보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자동차 산업을 비롯한 미국 중화학 공업의 중심지이면서 그로 인해 다른 한편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갖고 있다. 미시간대 연구에 따르면 디트로이트에 사는 성인 남녀 가운데 천식 증상을 보이는 비율이 다른 지역보다 15%나 높다. 증상이 심해 병원에 가는 비율은 3배에 달한다. 디트로이트의 자랑인 공장지대에서 내뿜는 독성물질과 그에 따른 대기오염 때문이다.
최근 미국 시사 주간지 뉴스위크는 납 수돗물 파동을 일으킨 미시간 주 플린트 사건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며 디트로이트 주변 심각한 환경오염 실태를 고발했다. 또 납 수돗물의 피해가 흑인에게 집중됐던 것처럼, 디트로이트에서도 환경오염 피해의 대부분이 흑인 및 유색인종에게 집중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뉴스위크에 따르면 디트로이트 남쪽 외곽의 소도시 리버 루즈는 전체 7,000명 인구가 대기 오염으로 심각한 상황에 직면했다. 1년 전 미시시피에서 이곳으로 이사온 재클린 카슨(37)은 최근 일주일에 서너 번씩 천식 발작을 경험하고 있다. 가벼운 천식 증상이 있던 그는 미시시피에서는 호흡기만 있으면 큰 문제가 없었으나, 요즘에는 하루에도 여러 차례 심각한 호흡 곤란 증상을 느낀다.
의사의 처방은 간단하다. 공기 좋은 다른 곳으로의 이주다. 그러나 연간 소득이 3만달러를 넘지 못하는 흑인 가정에게 나쁜 공기만 빼면 미국에서 여기만큼 더 살기 좋은 곳은 없다. 그래서 카슨은 열살 된 아들에게서 천식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하루하루 건강이 나빠지는 것을 감수하고 지낸다. 그를 버티게 하는 또 다른 힘은 발작 증세가 나타나면 이를 멈춰줄 강력한 스테로이드 제제를 구매할 수 있는 비상 처방전이다.
리버 루즈는 입지적으로 대기오염 위험에 심각하게 노출되어 있다. 반경 3마일(4.8㎞) 이내에 52개의 중화학 공장이 있다. 그 중에는 인근 디트로이트의 저그(Zug)섬의 US스틸 공장이 가장 크다. 검고 구불구불한 배관시설을 갖춘 이 공장에서는 매일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온다. 한 달에 한두 번씩은 하늘 전체가 검은 오렌지색으로 변할 정도다. 저그 섬에는 디트로이트 시민이 내놓은 하수와 공장 폐수가 걸러지는 폐수 처리장도 있다. 시멘트 제조업체인 카뮤즈라임 공장에서는 발암 물질인 벤젠, 포름알데히드와 함께 이산화황도 뿜어져 나온다.
뉴스위크에 따르면 리버 루즈를 포위한 52개 공장 중 22개는 미국 환경보호국의 특별 관리를 받는다. 절반 가량은 10톤 이상의 독성물질을 생산하는 공장이고, 다른 공장은 제조공정에서 4.5톤의 화학물질을 사용한다. 이들 공장이 내뿜는 공해물질로 리버 루즈 시내의 이산화황(천식 유발물질) 수치는 미국 연방정부 규제 수준을 넘어선 지 오래다.
여기까지만 따지면 리버 루즈 시민의 고통은 불가피한 것으로 보일 수 있다. 많은 근로자들이 생계를 위해 위험한 작업을 마다하지 않는 것처럼, 공업지대 디트로이트 주변을 거주지로 선택했다면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 도시의 입지 문제가 아니라 낡은 규정과 제도, 주민 안전을 책임져야 할 주정부 및 연방정부의 구조적으로 느슨한 대응에서 비롯된다는 게 미국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실제로 당장 재정 수입이 다급한 디트로이트와 미시간 주 정부는 이산화황 수치를 낮추는 노력은 하지 않은 채 오히려 리버 루즈 인근 공장의 공해물질 배출 허용량을 늘려줄 기세다.
뉴스위크는 고발 기사에서 리버 루즈에서 불과 500m 떨어진 ‘마라톤 오일’정유공장에 대해 미시간 주 환경국이 이산화황 배출 허가량을 22톤 가량 늘려주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폭로했다. 플린트 시민의 납 수돗물 호소를 1년 넘게 무시했던 미시간 주 환경국은 ‘22톤은 이 지역의 현재 총 배출량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낮기 때문에 환경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이에 앞서 환경국은 지난해에는 공해물질을 내뿜고 있는 인근 화력발전소에 추가로 가동 허가를 내준 상태다.
미시간주 환경국은 자신들도 공해 배출을 규제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역부족이라는 입장이다. 환경국 직원인 린 피들러는 뉴스위크와 인터뷰에서 “기업들과 공해물질 배출량 감축을 위해 협의 중이지만, 솔직히 매우 어려운 협상”이라고 실토했다. 대부분 기업들이 낡은 설비를 가동하고 있기 때문에 공해물질 감축은 막대한 비용을 유발하는 신규 투자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피들러는 “연간 3만4,000톤의 이산화황을 배출하는 DTE 화력발전의 경우 2차 대전 직후 가동에 들어간 설비”라며 “이들은 배출량 감축 요구에 매우 부정적”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2013년 ‘마라톤 오일’은 정유시설 화재로 인근 지역에 검은 연기가 자욱할 정도 독성물질이 배출됐는데도, 일주일 후 50~100달러 가량의 상품권을 나눠주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보상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수잔 배터맨 미시간대 교수는 공해배출 업체들이 미시간 주 당국에 협조하지 않는 것을 허술한 관련 규정 탓으로 돌렸다. 미시간 주의 경우 공해배출과 관련, 자체 규정은 전무하고 1970년 연방정부가 제정한 ‘청정 공기법’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이 법은 1990년 일부 개정된 이후 26년간 바뀌지 않고 있다. 따라서 공해물질 배출 허용량이 건강을 위협하는 수준을 훨씬 초과할 뿐만 아니라, 독성 물질끼리의 상호 작용으로 발생하는 위험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 배터맨 교수는 “산화질소와 이산화황을 함께 흡입하면 인체에 치명적 위협을 가한다는 게 확인됐는데도, 26년 넘은 ‘청정 공기법’은 두 물질에 대해 별도의 배출 허용량을 제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지역에는 연방정부의 도움도 미치지 못한다. 리버 루즈 시민들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많은 소수계 시민이 미 연방 환경보호청(EPA)에 오염배출 회사를 고발하지만, 허술한 구제 장치 때문에 95% 이상이 기각되고 있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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