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대를 잡아본 사람이라면 한번쯤 지붕을 열어 젖힌 차(컨버터블)를 타고 굽이치는 해안가 도로를 달리는 꿈을 꿨을 것이다. 신선한 바람과 쏟아지는 햇살, 온몸을 파고드는 속도감은 상상만으로도 짜릿한 전율을 선사한다.
이런 컨버터블을 이제는 우리나라에서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국산차 업체들은 아직 컨버터블을 내놓지 못해 죄다 수입차다. 올해도 속속 국내에 상륙 중인 컨버터블이 남성의 로망을 한껏 자극한다.
디자인은 필수, 안전성은 기본
지붕을 여닫을 수 있는 차를 보통 유럽에서는 카브리올레, 미국에서는 컨버터블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최근 이런 경계가 희미해졌다. 대체로 컨버터블이란 용어를 더 많이 쓰면서 메르세데스-벤츠나 포르쉐 정도가 카브리올레를 고수하고 있다.
차종도 과거에는 주로 잘 빠진 2인승 스포츠카를 컨버터블로 바꿨지만 점차 4인승 최고급차부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까지 거의 모든 차가 컨버터블이 되고 있다.
컨버터블은 지붕의 재질에 따라 크게 ‘하드톱’과 ‘소프트톱’으로 구분한다. 차체와 같은 소재로 만든 하드톱은 닫았을 때 일반 차와 구분이 되지 않는다. 디자인 완성도는 높지만 무겁고 구조가 복잡하며 비싸다. 메르세데스-벤츠는 1996년 버튼 하나로 지붕과 뒷유리 등을 삼등분해 자동으로 여닫을 수 있는 ‘배리오-루프’(vario-roof)를 개발, 하드톱의 보편화를 이끌었다. 1~5월 국내에서 224대가 팔려 1위를 달리는 BMW 428 컨버터블도 하드톱인데, 지붕 개폐는 20초면 충분하다.
하드톱과 달리 직물로 지붕을 만든 소프트톱은 가벼워서 여닫는 시간이 짧고, 트렁크에서 차지하는 공간도 적은 게 장점이다.
컨버터블은 추울 때는 거의 이용하지 않을 것 같지만 기술 발전 덕에 점점 계절 영향에서 자유로워지고 있다. 대부분의 컨버터블 좌석에는 주행 속도에 맞춰 탑승자에게 자동으로 따뜻한 바람을 불어넣는 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메르세데스-벤츠가 처음 개발한 ‘에어캡’(AIRCAP)은 지붕 대신 공기 모자를 씌운 것처럼 바람을 차단해 보온성을 높인다.
컨버터블에 가장 치명적 약점으로 꼽혀 온 전복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센서가 전복 가능성을 감지하면 좌석 뒤에 숨겨진 알루미늄 바가 1초 이내에 튀어나와 탑승객을 보호한다. 김다윗 롤스로이스 모터카 아태지역 매니저는 “한국은 1년에 9개월 이상 컨버터블을 즐길 수 있어 여가 생활의 변화에 따라 앞으로 수요는 더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남심(男心)’ 유혹하지만 아직은 먼 곳에
올해는 컨버터블 풍년이다. ‘미니 쿠퍼 로드스터’를 단종한 BMW의 소형차 브랜드 미니는 4월 초 3세대 ‘뉴 MINI 쿠퍼 컨버터블’을 투입했고, 최고급 브랜드 롤스로이스 모터카는 지난달 기본가격이 5억원부터 시작하는 컨버터블 ‘던’을 출시했다. 슈퍼카 브랜드 람보르기니도 ‘우라칸 LP 610-4’의 컨버터블 버전인 ‘우라칸 LP 610-4 스파이더’를 국내에 들여왔다.
랜드로버는 세계 최초의 콤팩트 SUV 컨버터블인 ‘레인지로버 이보크 컨버터블’을 오는 9월 출시하고, 재규어는 이달 초 부산국제모터쇼에서 첫 선을 보인 ‘F타입 컨버터블’의 한정판 ‘브리티시 디자인 에디션’ 판매에 들어간다. 앞서 지난해 재규어가 국내에 출시한 F타입 컨버터블은 1~5월 전년 동기 대비 330% 이상 늘어난 26대가 팔렸다.
F타입은 일반차를 먼저 만든 뒤 지붕을 깎아 컨버터블을 만드는 기존 관행을 뒤엎고, 컨버터블이 먼저 나온 것으로도 유명하다.
메르세데스-벤츠에서는 무려 4종의 신차가 새로 뛰어든다. 3분기 ‘뉴 S클래스 카브리올레’와 ‘뉴 SL’, ‘뉴 SLC’가 일제히 출시되고 4분기에는 ‘뉴 C클래스 카브리올레’가 나온다. 뉴 SLC는 기존 SLK200의 부분변경 모델로, 차명까지 변경된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최상위 모델인 S클래스 카브리올레의 고성능 버전 ‘메르세데스-AMG S63 4매틱’도 함께 선보인다.
컨버터블은 안락함이나 실용성보다는 주행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차이기 때문에 대개 고배기량 가솔린 엔진으로 어마어마한 성능을 발휘한다. 메르세데스-AMG S63 4매틱은 제로백(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 도달에 걸리는 시간)이 3.9초에 불과하다. 재규어 F타입 컨버터블(4.1초)이나 BMW 뉴 M4 컨버터블(4.4초)의 제로백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컨버터블의 매혹적인 디자인과 고성능은 비싼 가격을 동반한다. 국내에서 시판되고 있는 컨버터블의 절반은 1억원이 넘는다. 웬만한 살림으로는 엄두도 내기 힘든 가격대다. 5,000만원 이하는 차체가 가장 작은 뉴 미니 쿠퍼 컨버터블 하나뿐인데, 이마저 국산 중형 승용차들보다 1,000만원 이상 비싸다. 국산이 나오기 전까지는 대체재가 마땅치 않은 컨버터블의 ‘벽’은 여전히 높다. 김창훈 기자 ch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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