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학 졸업식이 몰려있는 5~6월, 일간지 뉴욕타임스 등 언론들은 졸업식에 초청된 명사 연설에 주목했다. 올해 졸업식에서 지성인들이 던진 화두는 혐오와 차별에 인간성으로 맞서자는 것이었다. 이들은 특히 구직난과 공화당 대선후보 도널드 트럼프가 불러일으킨 소수자 혐오주의 등으로 지금이 “암울한 시대”라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세상과 맞서라”며 졸업생들의 용기를 북돋웠다.
민주당 정치인들은 드러내놓고 트럼프를 비판했다. 뉴저지주 럿거스대학 졸업식에 등장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진실, 이성, 과학에 대한 거부는 퇴보로 가는 길”이라고 말한 뒤“세계는 그 어느 때보다도 연결돼 있다. 벽을 만든다고 바꿀 수 있는 흐름이 아니다”며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 벽을 세우겠다는 트럼프를 우회적으로 겨냥했다.
한때 대선 제3후보로까지 거론됐던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도 미시간대 졸업식 연설에서 정치를 화두로 꺼냈다. 그는 “미국은 중대한 기로에 처해 있는데 대선을 앞두고 공화당은 멕시코인과 무슬림, 민주당은 월가와 부유층을 손쉽게 적으로 몰아세우고 있다”며 트럼프와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의 ‘비주류 정치’를 동시에 비판했다. 그는 “해법은 증오가 아니라 화합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개척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비정치인 명사들은 좀 더 넓은 관점에서 인간성 회복을 주문했다. 하버드대 졸업식에 등장한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는 자신이 제작한 영화 ‘링컨’의 주인공 에이브러햄 링컨과 ‘쉰들러 리스트’의 주인공 오스카 쉰들러가 자신의 양심의 목소리를 듣고 차별과 맞서 싸운 인물이라 소개했다. 그는 “인종차별, 동성애 혐오 등의 ‘괴물’과 맞서 더 많은 인간성으로 대응하라”고 외쳤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뮤지컬 ‘해밀턴’의 연출가 린-마누엘 미란다는 펜실베이니아대 졸업식 연단에 서서 ‘흑인ㆍ라틴계ㆍ무슬림 등 소수인종 이민자들이야말로 미국의 경제를 지탱하는 희망의 상징’임을 강조했다.
잭슨 주립대 졸업식에 참석한 영부인 미셸 오바마는 “미국사회의 수많은 진보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역사의 흔적, 불평등한 교육, 불평등한 사법체계가 우리의 앞을 가로막고 있다”며 구조화된 차별을 극복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이어 “변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 것이라며 손을 들어버릴 것인가? 아니면 가슴을 펴고, 고개를 들고, 숨을 깊게 쉰 후 더 높은 곳을 향하겠다고 말할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차별과 혐오를 다루지 않은 연설자들도 졸업생들 앞에 가로놓인 경제난과 구직난을 염두에 둔 듯 ‘실패를 두려워 말라’고 역설했다. 공화당의 폴 라이언 하원의장은 위스콘신주 카타즈대학 졸업식에서 “완벽한 인생 계획 따위는 종이 분쇄기로 던져버리라”며 “꿈꾸는 직업을 얻지 못하더라도 당신의 인생은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오바마 대통령은 10일(현지시간) 선글라스를 착용한 채 큰딸 말리아의 고교 졸업식장에 나타나 눈길을 끌었다. 그는 미셸 여사와 함께 워싱턴DC의 시드웰 프렌즈 고교 졸업식에 참석했지만 별도의 연설을 하지는 않았다. 학교 측은 연설을 제안했지만 감정이 너무 복받칠 것이라는 이유로 오바마 대통령이 연설을 거절한 것으로 전해졌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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