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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비자금(秘資金) 수사

입력
2016.06.1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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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금은 기업이 경영활동에서 관례적으로 발생하는 커미션이나 리베이트(사례금), 회계처리의 조작 등을 통해 장부 외에 따로 챙겨놓은 부정한 돈을 말한다. 1987년 4월 범양상선㈜ 오너였던 고 박건석 회장이 1조원에 달하는 부채를 짊어진 회사 위기에도 불구하고 1,800만 달러의 자금을 개인적으로 챙겨 해외로 불법 유출한 사건이 불거졌다. 비자금이란 용어는 그 때 국세청 조사와 검찰 수사과정에서 쓰인 이래 사회적으로 널리 통용된 것으로 전해진다.

▦ 이후 비자금 사건은 기업에 대한 검찰 수사의 단골 메뉴가 될 정도로 계속 이어졌다. 우리나라가 외환위기의 소용돌이 속으로 급박하게 휘말려 가던 1997년 초엔 한보철강 부도와 함께 그 동안 물밑에 잠겨 있던 정태수 한보그룹 회장 비자금 사건에 대한 재수사가 본격화했다. 수사 결과 정 회장은 최소 4,000억원 이상의 비자금을 조성해 은행 대출과 정치권 로비 과정 등에서 물 쓰듯 뇌물을 뿌린 것으로 드러났다. 정치인과 전직 은행장 등 10여 명과 고 김영삼 대통령 차남 김현철씨까지 구속되면서 사상 최대의 금융비리사건으로 기록됐다.

▦ 2007년 10월에 불거진 삼성그룹 비자금 사건도 기업과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삼성의 전직 법무팀장이었던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로 시작된 사건의 개요는 당시 삼성의 각 계열사들이 분식회계 등으로 비자금을 조성해왔으며, 김 변호사 자신이 관리한 비자금만도 50억 원이었다는 것이다. 사건은 즉각 삼성의 전방위 로비 및 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 배정 혐의 등으로 확대돼 ‘삼성비자금 특검법’에 의한 수사가 진행될 정도로 커졌다. 사건의 여파는 결국 이듬해인 2008년 4월 이건희 회장이 퇴진하는 요인으로도 작용했다.

▦ 하지만 기업 비자금 수사는 성과보다 불신만 키웠다는 비판도 만만찮다. 한보든 삼성이든, 비자금의 실체는 결국 미궁에 빠졌다. 기소에 성공한 혐의에서도 ‘봐주기 수사’라는 비판 여론이 널리 확산됐다. 특히 한보 수사는 당시 기아자동차 사태와 맞물려 대외적으로는 우리 경제와 기업에 대한 신인도를 결정적으로 훼손하는 엉뚱한 부작용을 낳기까지 했다. 검찰이 주말인 지난 10일 롯데그룹에 대한 전격적 비자금 수사에 착수했다. 롯데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가 될 이번 수사가 어떻게 흘러갈지 궁금하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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