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여 년을 표구업에 몸담은 ‘한국 표구 역사의 산증인’ 이효우 선생의 구술집이 12일 출간됐다. 가나문화재단이 2014년 시작한 ‘문화동네 숨은 고수들’ 시리즈 두 번째로 나온 책 ‘풀 바르며 산 세월: 표구장 이효우 이야기’는 1세대 표구사에서 도제로 일하며 표구 기술을 익힌 뒤 1960년대부터 낙원표구사를 운영한 이효우 선생의 일대기를 담았다.
표구는 서화를 규격이나 용도에 맞춰 병풍, 족자, 액자, 첩, 두루마리 등으로 장식하는 것을 말한다. 그는 책에서 ‘표구’를 ‘서화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이라고 표현한다. 종이나 비단이 울지 않게 하려고 나무를 여러 차례 건조시키고 잘라 붙여 족자 축을 만들어 끼우고, 전에 잘된 표구를 뜯어내 공부하면서 어떻게 해야 작품과 표구가 더 오래갈지 연구했다는 에피소드 등을 읽다 보면 선생의 이런 표현에 저절로 공감하게 된다.
책에선 이효우 선생의 직업에 대한 자긍심과 함께 표구에 대한 올곧은 신념도 읽을 수 있다. 낙원표구에선 족자를 만드는 시간으로 보통 1개월을 둔다. 풀이나 종이에 걸리는 힘이 바깥 공기에 영향을 받지 않을 정도가 되려면 건조판에 붙여 자연스러운 신축 작용을 수 차례 거치도록 해야 하는데 이 작업에 1개월은 필요해서다. 주문자의 요구에 따라 풀을 몇 달씩 끓이는 대신 화학접착제를 쓰는 방법 등으로 제작 시간을 줄일 수 있지만 이것은 “올바른 표구사에게 도리가 아니다”라고 선생은 잘라 말한다.
표구 과정 자체도 섬세함을 요구한다. 표구를 단순 작업으로 생각했다가 엉망이 된 서화도 많다. 선생은 작품에 따라 액자 틀에 네귀 장식과 옻칠을 하기도 하고 수술과 산호 장식을 달아 고풍스러운 맛을 살리기도 했다. 이런 각고의 노력 끝에 선생의 표구는 서화에 깊이를 더한다는 평을 받는다.
책 출간을 기념해 서울 종로구 포럼스페이스에선 19일까지 출판기념전이 열린다. 이효우 선생이 고이 표구해둔 아계 이산해(鵝溪 李山海ㆍ1539~1609), 이재 권돈인(彛齋 權敦仁ㆍ1783~1859) 등의 작품 30여 점이 공개된다. 작품에 가려 보이지 않던 표구사의 손길과 내공을 확인하는 동시에 한시 지으며 풍류 즐기던 옛 문인들의 기지와 정신을 접할 수 있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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