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장 구조개혁에 반대만 해”
한국노총에 매년 주던 지원금 상반기 요청 34억 예산 배정 안 해
“정부가 노조 자율ㆍ자립성 침해”
찬성하는 신생 조직에는 지급… 노정관계 경색 당분간 이어질 듯
고용노동부가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이 정부 정책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매년 지급해오던 지원금을 올 상반기에는 지급하지 않기로 했다. 정부가 ‘돈줄’을 쥐고 노총 길들이기에 나섰다는 비판과 함께 가뜩이나 경색된 노정관계가 더욱 악화될 것이란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2월 한국노총이 ‘합리적 노사관계 지원금’ 명목으로 정부에 요청한 34억여원에 대해 예산을 배정하지 않았다고 10일 밝혔다. 고용부 고위 관계자는 “한국노총은 노사정대타협을 파기했고, 양대 지침(일반해고ㆍ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 완화)도입이나 임금체계 개편 등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위한 정부 정책에 반대 투쟁만 해왔다”며 “상반기 지원금 심의 결과 반대투쟁만 하는 노조에 국고를 지원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그 동안 ‘합리적 노사관계를 지원할 수 있다’는 노사관계발전지원법을 근거로 한국노총, 민주노총(산별연맹) 등 양대 노총을 비롯한 노동ㆍ시민단체에 예산을 지원해 왔다. 조합원 90만명으로 전국 최대 노총인 한국노총에는 노조간부 교육사업과 권리구제 상담, 정책연구 사업 등을 명목으로 매년 20억원 이상을 지원했다.
한국노총은 고용부의 결정에 대해 ‘돈으로 노조를 길들이겠다는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고용부는 노조 지원금 중 20억원 가량이 한국노총에 지원된다는 전제로 예산을 신청하고, 국회 역시 이를 염두에 두고 예산을 배정한다”며 “올해도 합리적 노사관계 지원 명목으로 전체 51억원의 예산이 배정됐다”고 말했다. 한국노총의 예산 지원을 중단한 것과 대조적으로 고용부는 ‘노동개혁’과 ‘교과서국정화’에 찬성해 온 전국노총에는 상반기 7,000만원의 예산을 지원하기로 했다. 전국노총은 지난해 9월 만들어진 조합원 2만여명의 신생조직이다.
고용부는 노동계가 정부정책에 반대 목소리를 낼 때마다 예산지급을 유보했던 전례가 있다. 지난해 4월 한국노총이 노사정위 불참을 선언하자 지급 예정이었던 지원금의 일부 보류했다가 한국노총이 노사정위에 복귀(8월)한 뒤 9월 합의안이 통과되자 7억원의 국고지원금을 집행했다. 이명박 정권 시절이던 2009년에도 한국노총이 타임오프제 도입을 반대하자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이런 정부 행태에 대해 전문가들도 비판적이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부의 노조 재정지원은 공익성을 전제로 할 때 정당성을 얻는다”며 “정책 찬반에 따라 지원금 지급 여부를 결정한다면, 정부가 노조의 자율성과 자립성을 침해하고 있다는 것을 자인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결정으로 경색된 노정관계는 당분간 더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한국노총 출신의 김영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과거에도 정부가 교육훈련사업지원금을 지급하지 않거나, 연수원 설립 지원을 둘러싸고 말을 바꿔 애를 먹은 적이 있다”며 “지원금을 끊는 방식은 노정관계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노중기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는 “국회에서 공공부문 성과연봉제, 노동개혁 법안 등이 최종 결정되는 올 하반기까지 경색국면이 이어질 것”이라며 “국회가 어떤 식으로 결론을 내리느냐에 따라 내년도 노정관계의 방향이 정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박주희 기자 jxp93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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