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빅~ 삑, 삑삐빅.”
검붉게 녹슨 탄피를 피해 검은머리물떼새 한 마리가 둥지를 틀었다. 새 생명을 품은 알도 낳았다. 인기척이 들리니 카랑카랑 쇳소리를 내며 경고음을 보낸다. 두려움에 퍼드득 날개 짓을 하지만, 이내 돌아와 소중한 핏줄을 품는다.
보랏빛 자주개자리는 바닷바람에 출렁이며 고혹한 자태로 나비와 벌을 유혹한다. 흰나비가 꽃봉오리에 앉을라 치면 벌이 날아와 자리를 뺏는다. 달콤한 향내에 빠져 날개 짓이 지칠 줄 모른다.
바닷물이 빠진 농섬 옆 갯벌에선 칠게 두 마리가 오밀조밀한 길을 내며 영역 싸움을 한다. 느리지만, 치열하다. 번식기를 맞아 갯벌 속 1~2m 깊이로 파놓은 집을 다른 수컷이 차지하려 하자 싸움이 벌어진 모양이다. 주먹질에 서툰 아이들이 어깨를 부여잡고 힘겨루기를 하듯 집게다리를 서로의 몸통에 걸쳤다.
지난 7일 오전 10시 간조에 맞춰 열린 바닷길을 따라 닿은 경기 화성시 매향리 농섬은 생명체의 온기로 가득했다. 과거 54년간 미 공군의 사격 훈련으로 진동하던 화약 냄새는 썰물처럼 빠졌고 갯벌 짠 내음과 풀섶 향기가 콧등에 내려앉았다. 낮게 자란 잡초와 야생화 등으로 덮인 농섬은 흡사 아름다운 섬 제주의 성산일출봉을 연상케 했다. 능선을 따라 올라가면 평탄지형이 나오고 거기에는 때이른 더위를 식히는 봄바람이 살랑댔다. 물결과 같은 바람을 타고 꽃들이 춤을 췄고 새들이 푸른 하늘을 유영했다.
바위 틈 곳곳에 폭격기가 쏟아 부었던 포탄이 흉물처럼 박혀있는 등 전쟁의 상처가 아직 깨끗이 아물지 않았지만, 생(生)의 기운이 움트기 시작한 건 분명했다.
환경단체 조사에서도 확인된다. 지난달 26일 화성환경운동연합이 매향리 농섬(웃섬 포함)의 물새 번식 현황을 살펴보니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검은머리물떼새 세 쌍이 둥지를 틀고 알을 낳았고, 흰뺨검둥오리의 산란 둥지는 무려 26군데서 파악됐다. 흰물떼새의 알 자리도 포착됐다.
검은머리물떼새는 멸종 위기(2급) 야생생물로 천연기념물 326호이다. 갯벌이 매립되고 오염되면서 서식지와 먹이 원이 사라져 멸종 위기에 처해 있는 새가 농섬 주변으로 돌아온 셈이다.
괭이갈매기는 이곳에서 잠시 머물기만 하던 저어새의 번식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높이 평가됐다. 저어새는 갈매기 번식지를 일부러 찾아 곁에 보금자리를 튼다. 종종 자신의 알을 훔쳐 먹는 갈매기의 습성을 알면서도 공생하는 것은 천적과 싸울 때는 강력한 동맹이 되기 때문이라고 환경운동연합은 설명했다. 저어새는 세계적으로 2,700여 마리만 남은 국제적 멸종위기종(1급)이자 천연기념물 205호다.
농섬 인근 갯벌 등도 확연히 달라졌다. 지난해 10월 전문가 조사와 같은 해 5~10월 시민조사에서는 ▦방게, 참방게 등 갑각류 21종 ▦괴물유령갯지렁이, 송곳갯지렁이 등 갯지렁이류 6종 등이 서식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낙지, 쭈꾸미, 비틀이, 갯비틀이 등 연체동물 25종과 ▦방게, 참방게, 칠게 등 갑각류 21종 ▦망둥어, 말뚝어 등 어류 2종 등도 확인됐다.
이는 미 공군 사격장으로 쓰였던 이 일대의 지질 환경이 확연히 개선된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화성환경운동연합은 설명했다. 2005년 사격장 폐쇄 직후 조사에서는 농섬 일대 납 함유량이 전국 평균에 비해 최고 520배(1kg당 2,500㎎)를 초과하고 카드뮴 함유량은 21배(2.13㎎)에 달하는 것으로 측정됐다.
농섬 등의 생태계 개선은 특히 주민들이 반기는 모습이다. 이날 새우잡이에 나선 한 주민은 “항공기 소음은 없어지고 갯벌이 사니 어민 소득도 높아졌다”라고 말했다.
정한철(39) 화성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내년 식목일 농섬에 소나무와 매화나무를 심어 더 좋은 환경을 만들 것”이라고 했다.
유명식기자 gij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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