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의 사진이 시선을 붙잡는다. 9일 국회 본회의 투표에서 95% 득표율로 국회의장에 선출된 정세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서청원 새누리당 의원의 축하를 받는 장면이다. 웃는 낯으로 정 의장 손을 잡아주었지만, 서 의원의 속마음이 어땠을까 궁금하다. 대기업 말단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정세균 의장이 6선이고, 서 의원은 두 차례나 더 많은 8선이다. 30대에 기자생활을 그만두고 민한당 후보로 당선된 11대 이후 35년을 국회 안팎에서 활약한 그다.
▦ 서 의원으로서는 딱히 더 이상 올라갈 자리도 없다. 여당 원내총무(지금의 원내대표)와 당 대표를 지냈고, YS시절에는 정무장관도 했다. 고희를 한참 넘긴 그에게 남은 꿈이 있다면 직업이 국회의원인 사람으로서 국가 서열 2위인 입법부 수장밖에 없었을 듯하다. 여당이 의장을 하느냐, 원내 1당이 의장을 맡느냐는 논란이 빚어졌을 때 그는 “야당에게 줘 버려라”고 해서 교착된 원 구성 협상에 물꼬를 텄다고 한다. 정치적 논란을 떠나 서 의원이 의장이 됐더라도 특별히 모나게 국회를 운영하지는 않았을 성싶다.
▦“정치 이런 식으로 하면 안 된다. 야당을 존중해야지”하던 그의 말이 기억난다. 친박연대 시절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감옥에 들어갔다 출소한 뒤 19대 보궐선거 출마를 고민하던 그를 식사자리에서 만났을 때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최경환 원내대표한테 하셔야지, 밥 먹는 자리에서 그런 얘기하면 무슨 소용이냐”고 맞받았다. 그는 15대 국회 원내총무시절 의전행사가 있으면 야당에 먼저 자리를 양보하고, 예우했다는 말을 자랑 삼았다. 국회선진화법 시행 직전인 19대 국회 전반기는 힘으로 밀어붙이는 여당과 장외투쟁이 일상인 야당의 물리적 충돌이 심한 때라 ‘구관이 명관’이다 싶었다.
▦ 20대 국회 후반기를 고려했는지 알 수 없지만 그의 현명한 판단이 원 구성 지연을 그나마 조기에 끝냈다. 그렇다면 새누리당 총선 참패의 원인이 된 공천 파동 당시에는 왜 그랬을까. 비박에 대한 친박의 패권 행각은 사색당파의 보복을 연상케 할만큼 시대착오적 일탈이었는데도 말이다. 그의 역할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정확히 알 수야 없지만, 명색이 친박 좌장이다. 계파의 논리가 상대를 존중해야 한다는 개인의 생각마저 뛰어넘었던 것일까. 참으로 불가사의한 권력의 세계다.
정진황 논설위원 jhch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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