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신시내티 동물원 우리 안에서 최근 사살 당한 고릴라 하람베,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에서 관광객을 실어나르다 땡볕에 지쳐 죽은 코끼리 삼보, 밀렵꾼의 자랑거리로 농락당한 채 숨진 아프리카 사자 세실, 역시 인간의 사소한 욕망에 휘둘리다 떼죽음을 맞이한 태국의 이름 없는 호랑이들. 보금자리를 위협받는 야생동물의 안타까운 사연이 지구촌 곳곳에서 끊이지 않고 들려온다.
안타까운 사연은 각기 다르지만 동물들이 희생되는 이유는 같다. 돈을 향한 인간의 마르지 않는 욕망이다. 아프리카야생동물기금(AWF)에 따르면 1파운드(약 453g) 당 거래 가격이 1,000달러(약 115만원)에 달하는 상아를 불법채취하려는 밀렵꾼들이 늘면서 2015년 한 해에만 아프리카 대륙에서 코끼리 3만5,000여 마리가 희생됐다. 하람베와 같은 운명을 맞이할 수 있는 새끼 고릴라(마운틴고릴라)는 마리 당 4만 달러(약 4,600만원)에 밀거래되며 생존한 개체 수가 900마리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다. AK-47소총, 수류탄 투척기, 저공비행 전용 헬기 등 밀렵에 나서는 인간의 무장이 무거워지면서 야생동물의 목숨값은 깃털처럼 가벼워지고 있다.
야생동물 구하기 팔 걷어붙이는 스타들
최근 들어 야생동물의 살육을 막아서는 최전방에 할리우드 스타를 비롯한 이른바 ‘샐러브리티(Celebrity)’라 불리는 각계 명사들이 앞다퉈 나서고 있다. 특히 하루 85마리 이상 밀렵꾼의 총구 앞에서 사라지는 코끼리를 구하기 위한 스타들의 발걸음이 부산하다.
영화배우 엘리자베스 헐리는 지난달 케냐 정부가 코끼리 사냥꾼과의 전쟁을 선포하기 위해 밀렵된 상아 105톤을 태운 현장에 함께 했다. 런던에서 케냐 수도 나이로비까지 단숨에 날아간 그는 “상아가 화염에 휩싸인 모습은 처참하기 짝이 없다”고 말했다. 영화 ‘노예12년’으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은 루피타 뇽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타그램에 밀렵꾼의 덫을 빠져 나온 새끼 코끼리와 찍은 사진을 올려 260만명의 호응을 얻었다. 그가 “소수의 장신구를 빛내기 위해 매년 3만 마리 이상 코끼리가 살해되는 상황을 지켜볼 수 만은 없다”고 남긴 메시지도 역시 수백만 명의 입길에 올랐다. 동물보호 운동을 꾸준히 해온 배우 리어나도 디캐프리오는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에서 역시 위험에 처해졌던 코끼리들과 사진을 찍어 SNS에 올려 50만 건의 ‘좋아요’를 얻었다. 그는 2013년에는 태국 총리에게 상아 무역을 반대하는 160만 명의 서명을 전달하기 위해 직접 태국으로 날아갔고, 멸종 위기에 처한 네팔 호랑이 보호기금으로 300만 달러를 쾌척했다.
코끼리 등 야생동물 살리기에 적극 동참하는 명사들은 배우 아놀드 슈워제네거, 크리스틴 데이비스, 농구스타 야오밍, 패션디자이너 토미 힐피거, 케이트 영국 왕세손빈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최근 뉴욕타임스(NYT)는 스타들의 동물 구하기 트렌드가 일종의 유행으로 자리잡고 있다며 “멸종위기에 몰린 코끼리 구하기가 전 세계 유명인들 사이에서 새로운 대의명분(Cause)이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신문은 ‘약자’인 야생동물이 ‘악당’과 다름없는 밀렵꾼과 불법 무역업자들에게 희생되는 영화 같은 구도 안에서 ‘영웅’의 이미지로 그려질 수 있는 역할을 스타들이 자임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야생동물을 살리는 데 도움을 주면서, 대중에게는 선한 이미지를 굳히는 일거양득의 효과가 은연중 작용한다는 것이다.
기금 마련에는 효과적…친 야생동물 이미지 부작용도
스타들의 동물보호 움직임은 실제 코끼리와 호랑이를 살리는 데 꼭 필요한 기금 마련을 쉽게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1차적으로 기부하는 돈 말고 다른 동료 유명인에게 동참을 권유해 연쇄적인 기부를 받아내는 경우가 빈번하기 때문에 스타가 주도하는 동물보호 캠페인은 매우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 지난해 가을 배우 오웬 윌슨이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코끼리 등 야생 동물 보호 기금 마련을 위해 벌인 자선 경매 직후 배우 수잔 서랜든 등이 수백만 달러를 잇달아 기부했다. NYT에 따르면 2014년 기준으로 전 세계에서 동물과 환경보호 목적으로 걷힌 기부금은 105억달러(약 12조1,621억원)에 달하는 데 이는 스타들의 동물애호활동이 본격적으로 이뤄지기 전인 2009년보다 43%나 급증한 규모이다. 미 뉴욕대에서 심리학을 강의하는 로라 프레드릭스는 “스타들은 자석과 같아서 순식간에 다른 스타들을 불러모으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라며 “몰입할 만한 화두가 바로 동물보호라는 사실을 깨달은 스타들이 끊임없이 몰려들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야생동물과 가까이하는 유명인들의 이미지가 자칫 밀렵과 불법 야생동물거래를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영 일간 가디언은 “스타들이 불법적인 루트로 사들인 애완 야생동물과 함께 찍은 사진이 오랑우탄, 원숭이 등 특히 유인원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는 유엔의 연구결과가 최근 나왔다”고 소개했다. 연구를 진행한 더그 크레스 유엔 대형유인원생존파트너십(GRASP) 프로그램 관리자는 “스타의 이미지를 보고 야생동물을 자신의 개인 동물원에 사들이는 부호들이 적지 않다”라며 “이들의 불법적인 유통을 막아설 방법은 사실상 없다”고 가디언에 말했다.
양홍주기자 yangh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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