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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의 길 위의 이야기] 개똥 철학

입력
2016.06.10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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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자주 마주치는 사람 중에 미국인 마이클이 있다. 마이클 옆에는 늘 백희가 있다. 백희는 마이클이 입양해 기르는 유기견인데, 이름처럼 털이 새하얗다. 마이클은 유기견을 입양해 키우는 자신의 행동이 이곳에서 두루 확산되기를 바라는 것처럼 누가 묻기도 전에 백희가 유기된 개였음을 밝히곤 한다. 그의 얼굴빛은 언제 봐도 뺨만 살짝 붉은 우윳빛이고, 백희도 희디흰 털에 덮여 있어 그들의 이미지는 제법 비슷하게 느껴진다. 어둠이 내리는 어제 저녁에도 마이클을 보았다. “나는 이게 정말 싫어요!” 꼬챙이 하나를 찾아 들고 풀숲에서 나온 마이클이 그걸로 길에 있는 개의 배설물을 치우며 말했다. “이러면 개 기르는 사람 모두가 욕먹잖아요.” 착한 마이클! 문득 황동규 시인이 생각났다. 언젠가 선생이 집 근처 약수터에 갔을 때 누군가가 자기 개의 배설물을 치운 뒤 잠시 망설이다가 주변에 널린 다른 개의 배설물까지 치우는 것을 보았다 한다. 그때의 상황을 자세히 설명한 것으로 미루어 선생은 그 사람의 행동을 높이 평가했던 것. 나는 대화에 끼어들지는 않았지만, 개를 키우는 사람들 중에는 그런 사람이 많음을 일찍부터 알았다. 나 역시 개를 키울 때는 다른 개의 배설물까지도 치우며 다녔고, 그걸 방치하는 자들을 동물 혐오주의자만큼이나 불편하게 느꼈다. 그 버릇은 쉽게 없어지지 않아 아직도 나는 개들의 배설물을 치울 때가 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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