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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있게 했지만 역사가 잊은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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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있게 했지만 역사가 잊은 그들

입력
2016.06.10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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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유학시절 혼자만 한복을 입고 있는 김마리아의 모습. 김마리아선생기념사업회 제공
일본 유학시절 혼자만 한복을 입고 있는 김마리아의 모습. 김마리아선생기념사업회 제공

한국사를 지켜라

김형민 지음

푸른역사 발행ㆍ580쪽ㆍ전 2권 2만8,500원

“조선 여자는 조선 사회에 적합하고 유용하도록 하며, 조선 사회에 헌신할 만하게 가르침이외다.”(김마리아)

1919년 2월 8일, 일본에서 유학하던 조선 학생들은 독립만세를 외치다가 두들겨 맞았다. 수백 명뿐인 일본 유학생 중에서도 여자 유학생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여자 유학생 친목회장이었던 김마리아는 “조선 여성들이 남성들에 뒤처지지 않게 독립운동에 참여해야 한다고 믿었고 그대로 실천”했던 몇 안 되는 여학생이었다. 2ㆍ8 독립선언에 참여해 연행됐다 풀려난 김마리아는 얼마 후 거들떠본 적도 없던 기모노를 걸치고 귀국길에 오른다. 기모노의 두꺼운 허리띠 안에 독립선언문을 감추기 위한 것이었다.

주로 고향인 황해도와 평안도 일대에서 독립 운동을 하던 김마리아는 3ㆍ1 운동 때 서울로 왔다가 체포된다. 회고록에 “물과 고춧가루를 코에 넣고 가마에 말아서 때리고 머리를 못 쓰게 해야 이런 운동을 안 한다고 시멘트 바닥에 구둣발로 머리를 차”였다고 한 모진 고문에도 그는 굴복하지 않았다. “너희들 할 대로 해라. 그런들 나라 사랑하는 생명만은 빼앗지 못하리라.” 도산 안창호는 그를 두고 “그녀 같은 사람 열 명만 있었어도 조선은 독립됐다”는 말도 했다. 김마리아는 그러나 1944년 3월 13일, 해방을 눈 앞에 두고 숨을 거두었다.

방송 PD이자 역사 저술가인 김형민씨는 “우리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역사는 있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작가는 이육사, 유관순 등 익히 알려진 인물부터 우리의 기억 속에 희미하거나 혹은 아예 흔적조차 없는 인물에 이르기까지 “오늘을 있게” 했지만 “오늘이 잊은” 그들의 삶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1권 ‘독립운동가로 산다는 것’과 함께 발행된 2권 ‘대한민국이 유신공화국이었을 때’는 “질끈 눈 감기에는 끔찍하도록 참혹”한 사건들을 소개해 독립을 위해 기꺼이 목숨값을 지불했을 독립 운동가들과 대비시킨다.

1964년 김형욱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북괴의 지령을 받고 대규모 지하 조직으로 국가 변란을 꾀하는” 조직이라며 ‘인혁당’(인혁당재건위원회)을 언급한 지 딱 10년째 되던 해. 대법원은 혐의를 받은 8명에게 사형 선고를 내린다. 그리고 판결 24시간도 지나지 않아 사형이 집행된다. “악마도 내 슬픔을 안다면 울지 않을 수 없으리라” 한 사형수 아내의 편지만이 단 한번 면회 없이 가족을 떠나 보내야 했던 남겨진 자들의 슬픔을 대변한다.

지난해 국정화 반대 1인 시위 중인 최형재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전주시민모임 공동대표.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난해 국정화 반대 1인 시위 중인 최형재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전주시민모임 공동대표. 한국일보 자료사진

작가는 “나쁜 것만 가르치면 자꾸 생각의 구조가 부정적이고 패배적으로 변하여 자기 잘못을 사회 탓, 국가 탓으로 돌리게 된다”며 국정교과서를 주창하는 이들의 어처구니없는 긍정 앞에 “부아가 치밀었다”고 고백한다. TV 모니터를 향해 삿대질을 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이 그가 ‘한국사를 지켜라’를 펴내게 한 밑거름이다.

정부가 국정교과서를 추진하기 위해 만든 홍보 영상 속에는 유관순 열사와 함께 백지 교과서를 든 학생의 모습이 나온다. 이때 자막이 깔린다. “나는 당신을 모릅니다.” 역사는 성찰과 해석의 학문이기에 정부가 정한 단 하나의 방향으로 갈 수 없다는 많은 사람들에게 “‘헬조선’을 외치는 젊은이들의 패배주의는 네 탓”이라고도 말한다. 작가는 책에서 “역사는 그를 무작정 긍정하는 자의 것도, 섣불리 부정하는 자의 것도 아니”라며 “슬프되 좌절하지 않았고 아프되 비루하지 않았던 한국사를 지키”자고 거듭 강조했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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