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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의 풍경... 저편에 가서 바라보세요

입력
2016.06.10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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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있는 곳이 달라지면 풍경도 달라진다.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이편이 아닌 저편에 서 보는 것. 내인생의책 제공
서 있는 곳이 달라지면 풍경도 달라진다.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이편이 아닌 저편에 서 보는 것. 내인생의책 제공

상상 이상

이스트 반 바여이 그림

내인생의책ㆍ42쪽ㆍ1만800원

#1. 어느 방 안. 활짝 열린 창밖에 종이비행기 하나 호젓이 날고 있다. 첼로를 켜던 작은 소녀가 내다보고 있다. 책장을 넘기니 건물 밖에서 본 풍경. 종이비행기 무수히 날고 있다. 소녀의 방 위층 반쯤 열린 창 밖으로 한 소년이 그것들을 날리고 있다. #2. 높은 하늘에 여객기 난다. 동체에 나란한 작은 창 하나에 밖을 내다보는 소년이 조그맣게 보인다. 책장을 넘기면 여객기 안의 모습. 제각기 제 일을 하는 승객들 끄트머리, 창가에 소년이 바짝 붙어 밖을 내다보고 있다. #3. 한가로운 바닷가. 사내아이들이 장난감 로켓을 쏘려 하고 있다. 책장을 넘기니 저편 바닷가, 강아지 한 마리가 떨어지는 로켓을 피해 황급히 달아난다….

그림책 ‘상상 이상’의 장면들이다. 책장의 앞면과 뒷면을 무대 삼아 이편과 저편의 풍경들을 대조해 보여준다. 동물원 호랑이 우리의 바깥쪽과 안쪽, 공연장 객석과 무대의 커튼 뒤, 지하철 동쪽 출구와 서쪽 출구…. 골목의 이 모퉁이와 저 모퉁이, 교실의 안과 밖, 수영장의 수면 위와 그 아래, 일식이 진행되는 중 달에서 본 지구와 지구에서 본 달의 모습들이 차례로 펼쳐진다. 허를 찌르며 전개되는, 이편의 당연한 풍경과 저편의 예상치 못한 이야기들. 독자는 ‘이런 줄 알았으나 실은 저러한 수많은 풍경들’을 목도하게 되는 것이다. ‘서 있는 곳이 다르면 풍경도 달라지니, 진실을 알려거든 저편에 서 보라’는 메시지가 훅 다가온다.

이 책의 원제는 ‘The Other Side’, ‘반대편’ 혹은 이편의 상대어로서 ‘저편’이라는 뜻이다. 글 없이 그림만으로 쓴 정교한 이야기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정독해야 할 만큼 ‘상상 이상’인지라 한국어판의 제목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주된 메시지의 측면에서 보면 역시 원제가 적절하며, 의역을 하자면 ‘역지사지’ 정도가 알맞겠다.

책장을 덮으니 또 다른 이편과 저편들이 떠오른다. 남녀와 노사와 갑을…. 도처에 역지사지가 절실한 시절이라, 문득 출처를 찾아보니 ‘맹자’에 닿는다. 맹자가 말하기를, “우 임금은 물에 빠지는 이 있으면 자신이 치수를 잘못하여 그가 물에 빠졌다고 생각했고, 후직은 굶주리는 이 있으면 자기의 잘못으로 그가 굶주린다고 생각하여 급하게 여겼다”. 이로부터 ‘남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여기다’라는 뜻의 ‘기익기기(己溺己飢)’라는 말이 나왔으며, 나아가 역지사지라는 말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하니, 역지사지의 주어는 약자가 아니라 강자이어야 함이 마땅하다.

하청의 말단 노동자로 끼니를 거르며 일하다가 무참히 스러진 열아홉 청년의 죽음에 가슴이 찢어지는 이즈음이다. 그를 죽음으로 내몬 이들은 물론 이편의 당연한 풍경을 보고 있을 게다. 이제라도 스크린도어의 저편에 서 보시라. 그게 옳지 않은가?

김장성 그림책 작가ㆍ출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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